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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나 리뷰 : 디즈니 실사 리메이크가 드디어 제대로 통했다

디즈니 실사 리메이크에는 늘 답답함이 따라붙었다.

굳이 다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보고 나면 원작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고 싶어지는 허전함도 있었다. 그런데 새롭게 나온 실사판 ‘모아나’는 그 흐름에서 꽤 멀리 벗어난다. 무난한 정도가 아니다. 지금까지 나온 디즈니 실사 리메이크 가운데 가장 잘 만든 작품이라고 말할 만하다.

물론 케네스 브래너의 ‘신데렐라’는 이 비교에서 잠시 제외해야 한다. 그 작품은 1950년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다시 만든 영화라기보다, 다른 결을 지닌 별개의 영화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디즈니 실사 리메이크가 안고 있던 한계

사실 디즈니 실사 리메이크라는 장르 자체는 애매하다. 기준이 높다고 보기도 어렵다. 애초에 이 장르는 존재 이유부터 자주 의문을 낳았다. 대다수 작품이 꼭 필요해서 만들어진 영화처럼 보이지 않았다.

디즈니의 수익에는 보탬이 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적으로 새롭게 더한 것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원작이 가진 생기와 리듬을 덜어낸 경우가 많았다. 화면은 무겁고, 움직임은 둔했으며, 보고 있는 동안에도 어딘가 땅에 붙어 있는 듯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결국 원작이 그리워졌다.

말하자면 존재 자체가 어정쩡한 평작들이었다. 그런데 ‘모아나’는 다르다. 애니메이션판을 보지 않은 아이가 이 실사 리메이크를 먼저 본다고 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새 ‘모아나’는 우리가 기억하는 ‘모아나’의 아름다움, 유쾌한 캐릭터성, 동화 같은 매혹을 제대로 건네준다.

 

실패와 성공 사이에 있었던 리메이크들

디즈니 실사 리메이크의 역사가 늘 어두웠던 것은 아니다. 작품마다 성패의 정도는 달랐다. 다만 그 차이가 치밀한 전략보다 운에 맡겨진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미녀와 야수’는 무거웠다. ‘알라딘’에는 윌 스미스의 매력이 있었지만, 로빈 윌리엄스가 보여준 천재성을 따라가기는 어려웠다. ‘인어공주’는 바닷속 애니메이션이 지녔던 마법과 경쟁하기 힘들었다.

‘백설공주’는 많은 이들에게 혹평을 받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성공한 리메이크 중 하나로 볼 여지가 있었다. 레이첼 지글러가 뿜어내는 빛에서 비롯된 서정적인 생기가 있었고, 일곱 난쟁이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욕해도 좋다.

 

모투누이에서 시작되는 작은 어색함과 반전

새 ‘모아나’의 초반부에는 약간의 어색함이 있다. 폴리네시아 섬 모투누이를 배경으로 한 장면들에서 실사 배우들이 뮤지컬 넘버를 소화하는 방식은 원작 애니메이션만큼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더 매끄럽게 넘어갔던 대목이다.

하지만 레나 오언이 모아나의 할머니 탈라로 전면에 나서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진다. 탈라는 이 이야기를 움직이게 만드는 장난기 많은 노년의 반항아다. 레나 오언은 그 인물에 늙은 히피 같은 자유로운 반짝임을 불어넣는다.

이어 호주 배우 캐서린 라가아이아가 모아나로 등장해 ‘How Far I’ll Go’를 부른다. 이번 작품이 그의 스크린 데뷔작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목소리는 종처럼 맑게 울리고, 부드러운 얼굴에는 감정이 풍성하게 번진다. 동시에 그는 섬세하게 양식화된 인물처럼 보인다. 노래가 지닌 서정적인 힘도 여전히 살아 있다. 관객은 어느새 한 섬 소녀의 상상 속으로 들어간다.

 

실사와 애니메이션 사이에서 찾은 답

이 영화가 제대로 통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형식에 있다. 2019년 ‘라이온 킹’ 리메이크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던 것도 결국 그 영화가 본질적으로는 애니메이션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새 ‘모아나’ 역시 컴퓨터그래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완성도도 공들인 흔적이 뚜렷하다. 덕분에 토머스 카일 감독은 화면에 생동감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모아나에게 말을 거는 듯 솟아오르는 투명한 파도, 코코넛 해적 카카모라, 마우이의 왼쪽 가슴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림 문신, 반짝이는 보물을 모으는 거대한 코코넛 게 타마토아, 그리고 마우이의 동물적 변신까지 모두 살아 움직인다. 타마토아의 목소리는 이번에도 저메인 클레먼트가 맡았다.

이 요소들이 모여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중간 어딘가에 있는 자유로운 세계를 만든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모아나’는 다른 디즈니 실사 리메이크들과 갈라진다.

 

드웨인 존슨이 직접 입은 마우이의 몸

모아나 리뷰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시 마우이다.

마우이는 애니메이션판 ‘모아나’에서도 대단한 캐릭터였다. 애초에 그는 드웨인 존슨을 노골적으로 양식화한 인물이었다. 드웨인 존슨 자신도 현실 속에서 하나의 과장된 캐릭터처럼 느껴지는 배우다. 당시 관객은 그의 목소리를 듣는 동시에, 그를 실제로 보고 있는 듯한 감각을 받았다. ‘You’re Welcome’을 부를 때의 태연한 장엄함은 특히 그랬다.

그런데 이제 진짜 드웨인 존슨이 마우이의 터무니없이 우람한 몸, 길고 곱슬거리는 섬 남자의 머리, 고집스럽고 자기중심적인 태도 속으로 직접 들어간다. 이보다 더 잘 맞는 조합이 있을까. 실사 리메이크가 마침내 제 길을 찾은 순간처럼 보인다.

그는 빠르고, 전염성 있게 좁은 시야를 가진 반신반인의 영웅이다. 원작에서 그랬듯 이번에도 잊히지 않는다. 오히려 실제 드웨인 존슨은 캐릭터에 조금 더 날 선 느낌을 더한다. 그 점도 좋다. 마우이와 모아나가 서로 물러서지 않고 부딪치는 의지의 싸움은 ‘모아나’의 극적 중심을 이룬다.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은 노래들

뮤지컬 영화의 노래는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다. ‘모아나’가 처음 나온 뒤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린마누엘 미란다와 오페타이아 포아이의 노래들은 오히려 더 좋은 쪽으로 숙성됐다.

‘모아나’의 음악은 친근하다. 그런데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벅찬 감정이 슬며시 밀려온다. 처음에는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처럼 들리지만, 장면과 만나면 인물의 욕망과 두려움, 성장의 감각을 함께 밀어 올린다.

모아나가 암초 너머로 나아가고, 아버지 투이 추장의 닫힌 부족적 자기혐오에 맞서며, 자신 안에 있던 길잡이로 성장하는 이야기도 단순한 여성 성장담에 그치지 않는다. 존 투이가 연기한 투이 추장은 딸을 붙잡아두려 하지만, 모아나는 계속 질문받는다. 마우이에게,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바다라는 거대한 세계에게서 말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흔한 ‘걸 파워’ 우화보다 더 촘촘하게 느껴진다. 모아나는 용감해서 떠나는 인물이 아니라, 질문을 피하지 않기 때문에 나아가는 인물이다.

 

바꿀 수 없는 장면은 그대로 두는 용기

모아나가 테 피티의 심장을 돌려주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거대한 불의 악마 테 카는 원작과 거의 똑같다. 이 선택은 옳다. 대체 무엇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는가.

이런 잿더미 거인을 존 번설 같은 배우에게 맡길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마지막에 테 피티, 곧 대지의 어머니가 선사하는 섬의 초록빛 폭발 역시 원작의 감흥을 그대로 살린다. 괜히 새로움을 만들겠다고 손을 대기보다,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아본 쪽에 가깝다.

 

원작을 대신하지는 못해도 나란히 설 수는 있다

물론 실사판 ‘모아나’가 애니메이션보다 실사가 더 매혹적인 형식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영화는 아니다. 어느 수준에서 보자면, 이런 리메이크들은 여전히 꼭 필요한 작품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새 ‘모아나’도 원작을 대신할 수 없다. 대신해서도 안 된다. 원작 애니메이션이 지녔던 리듬과 자유로움, 그림이기에 가능했던 탄력은 여전히 별개의 가치로 남아 있다.

다만 이번 영화는 적어도 원작 옆에 나란히 놓일 자격을 얻었다. 그것만으로도 디즈니 실사 리메이크 역사에서는 꽤 큰 성취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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