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쓴 결혼서약문 양식 때문에 결혼이 무효가 됐다?

2026년 1월 5일, 네덜란드의 한 지방 법원은 2025년 4월에 이미 성립된 것으로 여겨졌던 한 커플의 혼인을 법적으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결혼식까지 치렀던 이 부부의 혼인이 뒤늦게 취소된 것이다. 문제가 된 결혼식은 오버레이설주 즈볼러 시청에서 열린 시민결혼식이었다. 시가 관할하는 공식 절차에 따라 진행된 자리였지만, 네덜란드 법이 필수로 요구하는 당사자들이 서로를 배우자로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선언하는 절차가 식 중에 적절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이 사건이 화제가 된 이유는 판결 요지에 해당 선언이 AI가 생성한 문구였다고 적시되었다는 점이다. 다만 당사자들은 실제로 AI에게 결혼서약문 양식을 작성하게 한 것은 아니라며 이 부분에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시청에서 열린 결혼식, 그리고 한 친구의 역할

시청에서 열린 결혼식, 그리고 한 친구의 역할

이 결혼식이 열린 날은 2025년 4월 19일이었다. 커플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결혼식을 원해, 가까운 친구에게 결혼식 진행자이자 법적 절차를 담당하는 사식자 역할을 부탁했다.

네덜란드에서는 혼인이 법적으로 성립하려면, 반드시 이 사식자라는 제3자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는 시청의 혼인 등록관이 이를 맡지만, 시민결혼의 경우 가족이나 친구가 하루 한정으로 등록관에 임명돼 결혼식을 진행하는 것도 허용된다.

사식자는 신랑과 신부에게 법으로 정해진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변을 혼인 의사의 공식 선언으로 확인한다. 여기에 증인들의 입회와 서명이 더해져야 비로소 결혼이 성립된다. 일본처럼 서류 제출만으로 끝나는 구조와는 다르다. 이 커플은 “딱딱하지 않은 분위기”를 원해 친구에게 자유로운 진행을 요청했다고 한다.

 

결혼서약문 양식의 ‘맹세의 말’이 문제가 되다

결혼서약문 양식의 ‘맹세의 말’이 문제가 되다

친구는 사식자 역할을 무사히 수행했고, 증인들의 서명도 끝나 결혼식은 문제없이 마무리된 듯 보였다. 하지만 2026년 1월, 시 당국으로부터 뜻밖의 통보가 도착했다. “8개월 전의 결혼식은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혼인이 성립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친구가 준비한 ‘맹세의 말’이었다. 보다 로맨틱하고 캐주얼한 분위기를 위해, 해당 문구를 챗GPT를 활용해 구성했다는 점이 지적됐다.

네덜란드 민법 제1편 제67조에 따르면, 결혼은 다음 요건을 충족해야만 성립한다.

사식자와 증인 앞에서, 서로를 배우자로 받아들이고 법률이 정한 모든 혼인상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선언할 것.

그러나 실제 결혼식에서 사용된 질문들은 법적 문구보다는 감성적인 표현에 치우쳐 있었다.

“오늘도, 내일도, 그 이후의 모든 날에 서로 곁에 있겠느냐”,
“힘들 때도 다시 이 사람을 선택하겠느냐”와 같은 말들이 오갔지만, 법적으로 요구되는 핵심 문장은 빠져 있었다.

 

검찰 지시에 따라 혼인 사실은 말소

이 사실은 혼인 기록을 관리하던 직원이 결혼식 음성 기록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필수 문구가 빠졌다는 점을 인지한 시는 검찰에 이를 통보했고, 검찰은 법원에 혼인 증명서 말소를 요청했다.

법원은 민법 제1편 제24조에 따라 혼인을 전면 검토한 뒤, 해당 선언이 없으면 혼인은 성립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는 문구가 챗GPT로 생성되었다고 언급됐지만, 무효 사유는 AI가 아니라 필수 문구의 누락임이 분명히 명시됐다.

 

“AI가 쓴 글이 아니다”라는 커플의 반박

커플은 맹세의 말이 AI가 작성한 것이라는 점을 강하게 부인했다.
“친구가 직접 쓴 문장을 AI에게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확인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더 혼란스러운 점은, 당시 시청의 혼인 등록관도 현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인 지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한 하객이 절차에 문제가 없는지 등록관에게 물었지만, “문제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시는 입장을 번복했다.

 

AI 책임론에 대한 의문

이 사건은 해외 언론과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챗GPT 때문에 결혼이 무효가 됐다”는 자극적인 제목도 쏟아졌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일부 시민들은 말한다.
문제는 AI가 아니라 법적으로 필요한 문구를 확인하지 못한 인간의 실수라는 것이다. 사람이 썼어도 같은 실수가 있었다면 결과는 동일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두 사람은 7월에 다시 시청에서 혼인 절차를 밟아 정식으로 결혼했다. 다만 처음 결혼식을 올린 4월 19일을 혼인일로 남기고 싶다는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그 날짜가 두 사람에게 중요한 의미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법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커플은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며, 언젠가는 이 일을 웃으며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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