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북부 사하라사막에, 맹인들로 이루어진 마을이 있다. 워낙에 뜨겁고 건조하기로 유명한 곳이니, 시력이 멀쩡해도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땅일 텐데, 그곳에서는 세대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들이 계속 태어난다고 한다.
그 마을 이름은 ‘다리 긴바(Dali Gimba)’. 모리타니의 수도 누악쇼트에서 동쪽으로 약 1,000km 떨어진 오지에 있다.
맹인으로 태어나는 건 신의 뜻이었다고요
이 마을이 알려진 계기는, 마을장 집안에서 7~8대째 유전성 실명이 이어져왔다는 점 때문이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2018년 현지 대학(USTM)의 연구에 따르면, 마을 사람들이 앓고 있는 건 ‘선천성 백내장’이라고 한다. 부모 중 한쪽이 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 자녀에게 50% 확률로 물려줄 수 있는 ‘상염색체 우성 유전’ 형태다. 이러니 세대를 거듭할수록 맹인이 많은 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정작 이 마을 주민들은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큰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맹인을 “신이 내려주신 선물”이라 여긴다. 신이 마을 사람에게 “덕이 높은 맹인 아이가 태어날 것이고, 그 후손들도 맹인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내려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맹인을 치료해야 한다고 보지 않고, 오히려 당연한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앞을 못 봐도 사막에서 충분히 살 수 있어요
하와이대학교 마노아캠퍼스(UH Mānoa)의 인류학자, 사키브 A. 우스만이 2017년부터 다리 긴바를 오가며 연구해온 결과, 이 마을 사람들은 맹인의 삶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한다. 사막 한가운데서 식수 찾고, 가축 돌보고, 일상을 영위하는 것에 익숙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조상 대대로 맹인이었으니까, 우리도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라는 태도가 짙다는 것이다.
또 이 마을에는 “맹인들이 지하의 수원을 찾아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어쨌든 주민들에게는, “눈이 안 보이니까 우물을 잘 찾는다”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 굳이 의료 지원을 받아 시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겠다.
정부 지원? 우린 지금도 잘 살고 있는데요
일부 기사에서는 “가난하고 고립된 마을이니, 정부가 관심을 안 가져서 이런 문제가 계속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의외로 마을 주민들 대부분은 ‘정부가 나서서 실명을 치료하려 한다’는 시도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신이 주신 것을 왜 고치려 하느냐”라며 거부감을 드러낸다.
물론 선천성 백내장은 생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수술하면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는 그런 수술 자체를 별로 반기지 않으니, 자연스레 아이들이 그대로 맹인이 되어버리는 것다. 외부에서 보면 “아니, 왜 그냥 방치해두지?” 하고 답답해할 만도 하지만, 적어도 그들 입장에선 불만이 크지 않은 모양이다.
당신들 방식이 꼭 정답이진 않을 수 있잖아요
사키브 A. 우스만은 “의료 개입이 언제나 지역 문화나 가치관과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는 의도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들이 보기에 꼭 필요한 도움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묘한 딜레마가 생긴다. 인간적으로 보자면, 선천성 백내장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그냥 두는 게 옳은 건가 싶고, 또 그들도 도움을 받으면 더 편하게 살지 않을까 싶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사회, 그 문화에선 맹인을 부정적 상태가 아니라 ‘신성한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으니, 우리가 함부로 “이게 옳고 그르고”를 재단하기도 애매하다.
맹인으로 사는 또 다른 선택지
이 마을 사람들은, 눈이 보이지 않아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사막은 여전히 혹독하고, 바깥 세상과도 거의 단절돼 있지만, 어쩌면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엔 “시력이 없으면 세상이 얼마나 불편하겠어?”라고 단정 짓기 쉬웠는데, 다리 긴바의 사례를 보고 있으면, 불편함보다도 ‘우리는 이렇게 살았고, 또 앞으로도 이렇게 살 거야’라는 당당함이 먼저 전해진다.
물론 우리는 “치료하면 편해질 텐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맹인을 당연한 일부로 여긴다면, 굳이 남이 나서서 바꿔줄 필요가 있을까 싶은 마음도 든다. 이 모든 건 결국 그들의 선택이니까.
아무튼 다리 긴바 이야기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불편해 보이는 상태’가 꼭 고쳐져야만 하는 걸까? ‘우리 눈엔 비극처럼 보여도, 당사자들에겐 평범한 일상’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 마을은 당분간도 선천맹을 안고 살아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사하라사막 어딘가에서, 그들은 계속해서 우물을 찾아내고, 자신들만의 삶을 이어걸 것이다. 딴 세상 같은 이야기가 맞긴 하지만, 그 또한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라는 걸 부정하긴 어렵다. 세상의 다양성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우리의 상식 밖에 있는 삶들도 어디선가 당연하게 굴러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