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게의 집이라 하면 흔히 조개껍데기를 떠올린다. 몸에 맞는 소라 껍데기에 몸을 넣고 껍데기를 짊어지고 다니는 모습이 다들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거에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전 세계 많은 소라게들이 플라스틱 쓰레기, 금속 뚜껑, 유리와 같은 인공물로 만든 집에 살고 있다는 내용이다.
자기 몸에 맞는 껍데기를 찾기보다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쓰레기를 맞춰 쓰는 것이 이들에겐 더 빠르고 간편한 방법일 수도 있지만, 소라게들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선호하는 데는 단순히 편리함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소라게들 사이에서 유행(?) 중인 쓰레기 집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의 연구팀은 소라게 애호가들이 게시한 약 2만 9천 장의 이미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소라게들 사이에서 인공물로 만든 집이 유행(?) 중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공물로 만든 집을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된 소라게는 386마리였으며, 이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페트병 뚜껑과 같은 플라스틱 뚜껑으로, 인공 껍데기의 85%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런 트렌드는 열대 지역에 사는 16종의 육지 소라게 중 적어도 10종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소라게의 배는 매우 부드러워 껍데기를 짊어져 몸을 보호한다. 하지만 조개나 달팽이처럼 스스로 껍데기를 만들지는 않는데, 이는 껍데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안타깝게도 현재 전 세계의 바다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오염되고 있다. 소라게들에게는 맞는 껍데기를 찾는 것보다 넘쳐나는 플라스틱을 찾는 것이 더 쉬운 방법일지 모른다.
소라게들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선택하는 다른 이유
하지만 소라게들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선호하는 이유가 단순히 간편함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성 선택의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소라게 수컷에게 껍데기는 자신을 암컷에게 어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신기한 플라스틱 껍데기는 암컷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
이는 성적 디스플레이와 성 선택의 진화에서 신기함 자체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컷 소라게들은 인기를 끌기 위한 패션으로 인간에게는 쓰레기인 플라스틱을 선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실용성 면에서도 인공물이 선택되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플라스틱은 키틴질 껍데기보다 가벼우면서도 튼튼하기 때문에 천연물보다 더 성능 좋은 쉼터가 될 수 있다.
바르샤바 대학교의 마르타 슬킨 교수는 “처음 이런 사진을 봤을 때 마음이 아팠습니다”라고 BBC 라디오 4와의 인터뷰에서 전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요소들을 고려해 본다면, 쓰레기를 짊어지고 사는 소라게들이 정말로 불행한 것인지, 이로 인해 장기적인 영향이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만, 어쩌면 이는 ‘인류세'(인간이 환경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지질 시대)에서의 최적의 적응 형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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