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류는 지구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생명체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거의 모든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약이 되기도, 또 다른 경우에는 독이 되기도 하는데, 이제는 산업 폐기물마저 유용한 화합물로 바꿔내는 능력까지 보여주고 있다고 하니까 말이다.
독일의 스타트업 바이오페리온(Biophelion) 엔지니어 팀은 효모와 비슷한 성질을 지닌 Aureobasidium pullulans를 활용해 플라스틱 쓰레기를 분해하고, 그것을 새로운 물질로 바꾸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이 균류는 플라스틱만 소화하는 게 아니라, 플라스틱 쓰레기에 남아 있는 이산화탄소까지 에너지원으로 삼아 흡수하고, 그 결과 온실가스가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것까지 막아준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는 독일 연방정부 산하의 혁신 지원 기관(SPRIND)이 주최하는 “Circular Biomanufacturing Challenge”에서 비롯되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고 나온 3가지 신소재
물론 이 진균이 마치 마법처럼 플라스틱을 단번에 다른 물질로 바꿔버리는 건 아니다. 이 곰팡이는 어떤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고, 다양한 물질을 먹어 치운 뒤 각종 화합물을 내뿜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이 점이 핵심이 된다.
아우레오바시디움 풀란스는 산업 부산물을 분해하면서, 최종적으로 3가지 주요 화합물을 만들어낸다.
- 식품 생산에 사용되는 무미·무취의 다당류 풀룰란(Pullulan)
- 플라스틱 포장재로 적합한 폴리에스터
- 3D 프린팅에 활용을 목표로 하는 계면활성제 분자
특히 풀룰란은 이미 식품 첨가물로 활용되고 있는데, 음식의 질감을 보강하거나 양을 늘리는 데 쓰일 뿐 아니라, 구강 청량제 필름, 채식주의자용 캡슐 원료 같은 용도로도 사용되고 있다.
아직 이 물질들이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메커니즘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바이오페리온 공동 창립자이자 비렐펠트 대학의 미생물학자인 틸 티소(Till Tiso) 교수는 보도자료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기술은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응용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특히 풀룰란이나 계면활성제 분자 분야에서는 완전히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환경오염에 맞서는 자연의 해법
바이오페리온의 기술이 소재 과학의 대전환점이 될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겠지만, 무엇보다 이 기술 자체가 지속 가능성과 친환경성을 중심에 두고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화합물 가운데 계면활성제 분자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세제, 주방용 세척제 등 대량으로 쓰이고 있는 기존의 합성 계면활성제를 대체할 수 있는 후보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합성 계면활성제는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어왔는데, 균류 기반의 대체물은 그 문제를 줄여줄 수 있다.
물론, 이런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플라스틱 사용 자체를 줄이는 것이 선행되어야한다. 하지만 균류라는 자연의 힘이 여기에 더해진다면, 인류가 직면한 환경 문제의 해법이 한층 더 가까워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