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대분화로 이탈리아 나폴리 인근의 고대 도시 폼페이는 순식간에 파괴되었다. 당시 시민들은 시속 100km를 넘는 화쇄류에 휩쓸려 도망칠 새도 없이 생을 마감했고,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화산재에 의해 그대로 보존되었다. 발굴 과정에서 시신은 부패하여 사라졌지만, 화산재 속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석고상을 만들었고, 이 석고상 안에는 유골이 함께 남아 있었다.
이 석고상에서 채취한 유골의 DNA를 분석했는데 그 결과는 지금까지 추정되었던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폼페이 석고상 유골의 DNA 분석으로 기존 가설 뒤집혀
폼페이 유적과 석고상들은 발견된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가지 훼손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12년부터 ‘그란데 프로젝트 폼페이(Grande Progetto Pompei)’라는 폼페이 유적 보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2015년, 고고학자들은 폼페이 주민 석고상 86구의 보수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고, 이 과정에서 14구의 석고상에 일부 유골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해당 유골에서 DNA를 추출했다.
이들의 DNA 분석으로 기존의 가설을 뒤집을만한 결과가 나왔다. 예를 들어, 아이를 안고 있던 인물은 금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고 아이를 보호하려는 자세로 인해 여성으로 여겨졌지만, 남성임이 확인되었다. 또한 ‘황금 팔찌의 집’에서 발견된 네 명은 부모와 두 자녀로 추정되었으나, 유전적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서로 껴안고 있던 두 사람 또한 모두 남성이었다.
폼페이 사회의 복잡성과 유전적 다양성
이러한 결과는 폼페이 사회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했음을 보여준다. 기존의 성과 가족 구조에 대한 선입견이 틀렸다는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알리사 미트닉’은 “이번 분석으로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깊이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며 “로마 사회의 성과 가족 형태에 대한 단순한 해석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DNA 분석을 통해 폼페이 시민들이 예상보다 더 큰 유전적 다양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분석된 희생자들은 수 세대 동안 지역에 거주한 토박이가 아니라, 동지중해나 근동에서 이주한 비교적 최근의 이민자 후손이었다. 이는 로마 제국의 광범위한 무역과 초기 세계화의 영향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된다. 로마 제국은 당시 다양한 지역과의 교류를 통해 문화와 사람들이 활발히 이동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알리사 미트닉’은 “우리의 연구가 기존의 가설을 뒤집었지만, 이는 다양한 증거를 통합하고 현대의 관점을 고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고대의 문맥을 존중하고 현대적인 선입견을 배제한 채 연구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