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준비하며 아내가 남긴 20개의 비디오테이프, 그리고 7년 후

※ 이 이야기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소개된 체험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 공유합니다.

 

며칠 전,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아이가 뭔가를 쓰고 있는 걸 우연히 보게 됐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그건 세상을 떠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아빠도 좀 봐도 될까?”

살며시 말을 건네고, 조심스럽게 편지를 넘겨봤다.

아직 서툰 글씨였지만, 거기에는 아내에 대한 마음이 담담하고 정직하게 적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문득 이야기해주고 싶어졌다.

조금쯤은… 옛날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지.

 

아내와 처음 만난 건, 한여름의 오후였다.

원래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썩 잘하지 못했던 나는, 외출할 땐 항상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다녔다.

복잡한 역이나 북적이는 거리에서는, 그 음악이 유일하게 내 마음을 지켜주는 방패 같았다.

그날도 아마, 이어폰 너머로 흐르는 노래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날은 여동생의 생일 선물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문득 하늘을 바라보며 걷고 있는데, 누군가와 부딪혔다.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놀란 듯 멍하니 서 있는 그 아이에게 나는 말했다.

“괜찮아요?”

그리고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그게 바로, 아내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녀는 길을 잃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짧은 순간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목적지를 안내해주고 돌아서는 길,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연락처를 물어봤다.

그때부터 우리 둘은 조금씩, 천천히 서로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문자를 주고받고, 몇 번 더 만나고, 함께 있는 시간이 당연한 일상이 되어갔다.

 

처음 만난 지 두 달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녀가 먼저 내게 고백했다.

“나, 너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

그 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그날부터 주말이 기다려졌고, 매일매일 그녀를 생각했다.

함께 놀러 가기도 하고, 만나지 못하는 날엔 몇 통이고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우리는 같은 대학에 진학하자고 약속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 성적으로는 좀 어렵다는 얘길 선생님께 들었지만

그녀와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그리고 마침내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 우리는 껴안고 펑펑 울었다.

그녀가 그날 보여준 미소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된 어느 날.

그녀가 갑자기 말했다.

“우리, 헤어지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리가 하얘진 채, 나는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거실에는 그녀와 그녀의 부모님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나, 지병이 있어. 스물다섯까지 살 수 있을지조차 몰라.”

“이대로 함께하면, 너한테 짐이 될까 봐…”

그래서, 마음을 정리하고 물러서려고 했다고.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울어버리면 정말 끝일 것 같아서… 꾹 참았다.

나는 겨우 웃는 얼굴을 지어보이며, 그녀의 부모님께 고개를 숙였다.

“제가 그녀에게 받은 웃음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부탁드립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있게 해주세요.”

 

물론 반대하셨다.

“너무 어리잖니, 후회하기 전에 포기해라.”

그런 말을 들었지만…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동안의 침묵 후, 그녀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나, 그런 네 모습에 반한 걸지도 몰라.”

그리고 부모님을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나도… 그 사람과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싶어.”

어머니와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쉬시더니

“…너희 마음대로 해.”

그렇게 허락해주셨다.

 

우리는 스물한 살에 결혼했다.

작지만 따뜻한,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출근하는 나를, 그녀는 언제나 부드럽게 배웅해주었고

매일이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품게 됐다.

산부인과에서 심장 소리를 들은 날

우리는 또다시 서로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스물셋, 봄.

딸이 태어났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 무렵부터, 아내는 가끔 이상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딸아이를 쓰다듬으며, 잔잔하게 웃더니 이런 말을 했다.

“이 아이는 내가 살아 있던 증거야. ○○, 이 아이 잘 부탁해.”

“뭐야 그게…”

나는 웃으며 얼버무렸지만, 그 말이 왠지 마음 한구석에 걸렸다.

 

스물네 살의 어느 날, 아내는 갑자기 비디오테이프를 한가득 사 왔다.

“딸한테 남기는 영상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웃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무슨 뜻으로 그 말을 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총 20개의 테이프를 남겼다.

딸이 자라면 조금씩 보여주라며, 내게 맡긴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날이 찾아왔다.

아내는 갑자기 쓰러졌고,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 것 같습니다. 가능한 한 많은 대화를 나누세요.”

나는 단 한순간도 곁을 떠나지 않고,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고, 평온한 미소를 지었다.

“왜 그래? 이런 때에 그렇게 행복한 얼굴을 하고…”

내가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왜냐면… ○○는 울보잖아. 내가 웃으면서 인사해야, 네가 계속 울지 않을 테니까.”

 

그 말에, 참을 수 없었다.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지만,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녀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역시나, 울보네.”

 

그녀의 손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 나 정말 행복했어. 그때… 나랑 결혼해줘서, 고마워.”

그 말이,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장례를 마치고, 방을 정리하던 중 한 봉투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내 이름이 적힌 편지가 들어 있었다.

 

『○○에게

잘 지내고 있어?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땐, 나는 아마 하늘 위에 있을 거야.

○○는 나한테 정말 많은 사랑을 줬지.

놀랄 일도 많았지만, 매일매일이 참 즐거웠어.

딸이 태어났을 때, 네가 눈물 흘리며 기뻐해줘서

정말… 진심으로 “낳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아이, 잘 지내고 있어?

내가 없어도, 꼭 잘 키워줘야 해.

전에 말했지만, 그 아이는 내가 살아 있었던 증거야.

그러니까, 부탁해.

사실 더 쓰고 싶은 말이 많지만, 여기서 멈출게.

나는 이제 없지만, 앞으로도 계속 너희를 지켜볼 거야.

○○는 울보니까, 딸 앞에서는 씩씩하게 있어줘야 해?

이젠 더는 울지 않겠다고, 약속해?

나는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를 사랑해.

– 네 아내가』

 

편지엔 군데군데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늘 웃던 그녀도… 사실은 많이 울었구나.

그 따뜻한 마음에 닿아, 나는 또 한 번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너도… 울보였잖아.

그렇게 중얼이며, 나는 그 편지를 꼭 안았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다.

딸은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엄마를 닮아, 참 다정한 아이로 자라고 있다.

오늘, 그 아이가 엄마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도 오랜만에… 따라 써 보기로 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오늘, 딸이 너한테 편지를 쓰고 있었어.

그 모습을 보니까, 나도 오랜만에 너한테 편지를 쓰고 싶어졌어.

네가 남겨준 사랑은 지금도 우리 둘을 감싸주고 있어.

딸은 네 모습 그대로야. 환하게 웃으며 잘 지내고 있어.

일은 여전히 정신없지만, 그 아이와 보내는 하루하루가 내 삶의 버팀목이야.

나와 아이에게, 이렇게 큰 행복을 남겨줘서 정말 고마워.

지금도 여전히, 너를 사랑해.

앞으로의 우리를, 하늘에서 꼭 지켜봐줘.

사진 한 장 동봉할게.

오늘, 딸이랑 둘이서 찍은 사진이야.

보면 또 웃어줬으면 좋겠다.

이젠 나… 더 이상 울보 아니야.

이 모든 게 다, 너 덕분이야.

고마워』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에게.

그리고, 그 사람과 나를 이어준 소중한 아이에게.

지금에서야 겨우

고마운 마음을, 말로 전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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