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자바섬 동쪽, 해발 약 2,799m 지점에 우뚝 선 이젠(Ijen) 화산은 외견만 보면 여느 활화산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밤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눈부시게 파란 불꽃이 피어오르며, 온 세상이 신비로운 파랑빛 장막에 감싸이는 듯한 광경이 펼쳐진다. 이것이 바로 이젠 화산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유다.
파란 불꽃을 내뿜는 화산
The lava from Indonesia’s Kawah Ijen volcano has an electric blue appearance
pic.twitter.com/3dXbHCsDcV— Science girl (@gunsnrosesgirl3) January 10, 2024
사실 이젠 화산이 화제를 모은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몇 해 전부터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카와 이젠(Kawah Ijen)으로 불리는 화산 분화구의 영상이 확산되면서, 전 세계 여행자들 사이에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장관’이라는 말이 돌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또다시 이 파란 불꽃 영상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 파란 불꽃의 정체는 무엇일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흔히 아는 붉은빛 용암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장을 취재한 학자들은 “녹아 흐르는 용암 자체가 파란색으로 빛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오히려 이는 화산암의 균열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황가스가 공기와 접촉하며 연소될 때 생기는 일종의 화학 반응이다. 섭씨 360도 이상의 고온, 그리고 비교적 고압 상태에서 분출된 유황 가스가 산화 반응을 일으키면서 푸른 불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표면에 닿아서도 불꽃은 계속 타오를 수 있는데, 때로는 그 길이가 5m 안팎에 이를 정도로 상당히 강렬하다고 한다.
낮 시간대에는 빛이 너무 강해 파란 불꽃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주변이 어두워지는 밤이면, 이 파란빛이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훨씬 또렷하고 몽환적으로 느껴진다. 때문에 밤을 기다려 카와 이젠으로 올라가는 이들이 많다. 운이 좋다면, 밤새 활활 타오르는 파란 불꽃을 구경하고, 동이 튼 후에는 분화구 안쪽에 자리한 장엄한 호수를 내려다볼 수도 있다.
이 호수 또한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자랑한다. 화산 폭발과 함께 생겨난 분화구 안에 고인 이 호수의 pH값은 무려 0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 그야말로 ‘강력한 산성 호수’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전문가들은 이 호수에서 수영이라도 할 양이면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다고 단언한다. 설령 호기심이 동하더라도, 실제로 물에 들어가는 일은 절대 삼가야 한다.
화산 주변 주민들의 황 채굴
하지만 이 위험천만한 환경에서조차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현지 주민들은 이곳에서 유황을 채굴해 생활비를 번다. 매캐한 가스와 뜨거운 열기 사이를 오가며 돌덩이처럼 굳은 유황을 궤짝에 담아 나르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경이롭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이젠 화산 지대 전체에 분화 지점이 스무 곳 넘게 흩어져 있는데, 그중 일부 구역은 유황이 쌓여 노란빛을 띠는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주민들은 바로 이 노란 ‘황 덩어리’를 덩이째 채굴해 식품이나 화학 공업용 원료로 판매한다.
현지 한 주민은 “이젠 화산이 우리에게 위험하기만 한 건 아니다. 생계를 이어가는 터전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이어서 “파란 불꽃은 신비롭게 보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그만큼 뜨겁고 위험한 존재다. 그래도 이것이 없으면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우니, 참 아이러니하다”라고 한다. 실제로 이 지역 광부들에게 작업 환경은 고되고 험난하기 그지없다. 가파른 화산 지형을 오르내리면서, 유황 덩어리를 무게 제한 없이 날라야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젠 화산의 파란 불꽃은 이들에게는 삶의 터전이자 관광객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여행지의 매력이 되어준다.
이젠 화산은 이미 세계 여러 매체에서 ‘인생에서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히곤 한다. 모험심 넘치는 배낭여행객부터, 독특한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려는 사진작가, 자연 현상의 신비를 연구하는 지질학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그리고 그들의 SNS에는 어김없이 파란 불꽃의 환상적인 장면이 올라온다.
물론 당연하겠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은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화산 가스가 뿜어내는 매캐한 냄새와 가파른 지형, 그리고 호수 가까운 곳에서는 산성 물질이 닿을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보호 마스크와 방진경, 튼튼한 등산화는 필수다.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한 번쯤 파란 불꽃이 춤추는 밤의 이젠 화산을 마주한다면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