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습격 시, 좀비와 싸우기 위한 군사 작전 계획이 있다?

2011년 4월 30일,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펏 공군기지(Offutt AFB)에서 문건 하나가 작성되었다. 당시 미국 전략사령부(USSTRATCOM)는 ‘혹시라도’ 일어날 수 있는 기상천외한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좀비 대규모 침공 말이다.

언뜻 들으면 장난 같아 보이는 이 계획은, 생각보다 꽤 진지하게 만들어졌다. ‘좀비가 정말로 나타난다면, 군은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하나?’, ‘국민과 기반 시설은 어떻게 보호해야 하나?’ 같은 질문에 답을 내리려고 했다. 게다가 좀비를 유형별로 나눠 분석했는데, 바이러스 감염으로 생긴 좀비, 방사선 노출로 생긴 좀비, 심지어 초식성 좀비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의문을 품은 것은 따로 있었다. “핵전력 운용과 방어가 주요 임무인 미국 전략사령부가 왜 굳이 좀비 대비책을?” 하는 점이다. 실제로 이 부대는 핵 억지력, 미사일 경보, 우주 감시 등을 주로 담당하는 곳이다. 그런데 좀비 대비라니, 아무리 미국이라 해도 좀 ‘황당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의외의 이유에서 출발했다.

 

황당할수록 잘 외워진다?

 

CONPLAN 8888-11은 사실상 젊은 장교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교재’라는 성격이 강했다. 군사 작전을 실제 국가를 배경으로 시뮬레이션하면 외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특정 지역이 노출되는 것도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 법한 설정을 너무 무시하기엔, 교육적인 몰입감이 떨어졌다.

교육 담당자들이 선택한 해법이 바로 “최대한 현실성 없어 보이면서도, 한 번 빠져들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시나리오”였다고 한다. 좀비는 그런 면에서 최적의 소재였다.

 

만약 정말로 좀비가 습격한다면?

 

이 계획서는 ‘실제로 좀비가 들이닥쳤을 때 총을 어떻게 쏴야 한다’ 같은 실전 교과서가 아니다. 되레 좀비가 출몰했을 때 가장 중요한 핵심은, 국민과 자원(식량, 물, 전력 등)을 어떻게 보호하고 아군을 어떻게 조직적으로 움직일 것이냐는 점이었다.

미국 전략사령부가 상정한 대규모 아웃브레이크(Outbreak)는 단순히 ‘시체가 살아난다’는 식의 사건이 아니라, 감염증처럼 퍼질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다. 그래서 미리 병원체(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 또는 이를 만들려는 조직을 감시해야 한다는 식으로 계획이 짜였다. 여기에 아군 부대 간 협조, 일반 시민 지원, 교통·전력·의료 시설 방어 등등, 현대 사회 시스템 전반을 어떻게 유지할지까지 다룬다.

핵심 포인트 중 하나는 “좀비는 인간과 달리 인식 능력이 없다”는 전제다. 대화로 설득하거나 협상을 할 수 없으니, 결국 막는 방법은 강제력뿐이라는 말이다. 단, ‘누가 좀비를 만들려고 하는가?’를 파악하는 작업은 필요하다. 적대 국가건 테러리스트건, 또는 의도치 않게 위험한 연구를 하는 기업이건 간에 확실히 감시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군사 행동에 대한 오해는 금물

 

혹시라도 미군이 군사 행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러시아나 중국 같은 다른 강대국이 “저건 우리를 겨냥한 전쟁 준비다!” 하고 오해할 수 있다. CONPLAN 8888-11은 이 부분도 명시하고 있다. “상대가 오해하지 않도록 신뢰 관계를 구축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좀비 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당신 나라를 공격하려는 게 아니다’라는 점을 확실히 해둬야 한다는 뜻이다.

군사적으로 본격적인 대 좀비 작전은 아웃브레이크 후 40일 이내에 개시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예를 들어, 사람이 밀집된 도시에서 빠른 속도로 감염이 번진다면, 긴급히 봉쇄하거나 소탕 작전을 펼쳐야 한다. 미 전략사령부 자체에는 지상전을 위한 대규모 병력이 없으므로, 실제 교전은 미 공군이나 해군, 우주군 등이 맡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핵무기가 사용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다. 감염을 막기 위해 ‘절대 나가선 안 되는’ 구역이 생길 수도 있는데, 좀비 무리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핵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다. 물론 이런 상황은 상상 속의 최악 시나리오이길 바랄 뿐이다.

 

좀비는 과연 ‘사람’일까?

 

그렇다면 한 가지 법적 문제도 남는다. 미국 시민이 좀비가 되었다면, 과연 그 좀비는 아직 미국 시민으로 볼 수 있을까? ‘미국 시민에게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여러 법과 국제협약에 위배될 수 있다.

CONPLAN 8888-11은 이에 대해서 “좀비는 ‘인간 또는 동물’이 아니라 비생명체 혹은 유기 로봇 같은 개념으로 간주한다”고 밝힌다. 즉, 전쟁법이 규정하는 대상이 아니므로, 군사 행위를 법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물론 실제 법정에서 이 논리가 얼마나 통할지는 미지수다.

 

실전에서 쓸모가 있을까?

 

누구도 좀비와 제대로 싸워본 적은 없지만, 미군은 감염병 대응이나 재난 복구 활동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2014년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출혈열이 퍼졌을 때도 미군이 의료 지원 및 감염 차단에 참여했다. 재난이 터졌을 때 군이 어떻게 역할을 해야 하는지는 꽤 잘 숙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덧붙여, 광견병 바이러스가 극단적으로 변이해 사람을 극도로 공격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종종 보고되기도 한다. 물론 이론상의 이야기지만, 만약 이런 바이러스가 실제로 나타나 전 세계에 퍼진다면, CONPLAN 8888-11 같은 매뉴얼이 적어도 ‘초기 대응’에는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이어질 상상

 

좀비라는 존재는 영화, 게임, 소설 등 대중문화에서도 끝없이 변주되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쩌면 미군이 만든 ‘대좀비 작전계획서’는, 이 상상이 얼마나 무궁무진하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일 것이다.

CONPLAN 8888-11이 정식으로 발표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진짜로 좀비가 나타나면 어떡해?”, “그냥 농담 아니었어?” 같은 반응부터, “어쨌든 이런 시나리오는 방재 훈련에 유용하다”는 진지한 평가도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다. 이 문서가 그저 재미있는 도시전설로 끝나기를. 정말로 지옥의 문이 열려 좀비가 쏟아져 나오는 일은 앞으로도, 그리고 영원히 없었으면 한다. 그저 상상으로만 남아도 충분히 무섭고, 이미 우리에겐 다른 위협들 질병, 자연재해, 전쟁이 넘쳐나지 않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재난 상황에 대한 이러한 준비와 시나리오 검토는 헛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난은 상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찾아올 수 있다. 그러니 황당한 시나리오라도 미리 고민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야말로, 혹시나 모를 위기에서도 우리가 조금이나마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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