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에게 발바닥을 핥게 하는 잔혹한 중세 시대 형벌

중세 유럽에는 한때 “염소의 혀”라고 불리는 형벌이 있었다고 한다. 이름만 들으면 뭔가 우스꽝스러운 상상이 떠오를 수도 있지만, 실상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극심한 고통을 수반했다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염소라는 동물이 그 형벌의 집행자 역할을 자처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발바닥을 핥는다는 행동이 어떻게 고문에 가까운 처벌이 될 수 있었을까?

 

고통을 주는 형벌의 역사

 

인류는 오래전부터 죄인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써 죄를 벌하거나 반성을 유도하는 처벌 방식을 택해 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물리적 고통을 가하는 형벌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특히 중세 유럽에는 수많은 고문 도구와 처벌법이 존재했는데, 그중에는 지켜보는 사람에게조차 충격을 안겨줄 만한 것들이 적지 않았다. 현대에도 시행되는 태형이 이런 ‘고통 가하기’ 전통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시대가 바뀌고 법체계가 발전하면서 많은 국가에서는 사라졌지만, “죄인에게 몸소 고통을 준다”는 발상 자체는 여전히 역사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염소의 혀라는 독특한 형벌

 

이제 ‘염소의 혀’ 형벌을 살펴보자. 사람의 손을 더럽히지도 않고 복잡한 장치를 준비할 필요도 없다는 점에서, 당시의 고문관들에게는 편리하면서도 효과적인(?) 처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죄인의 발바닥에 소금을 바르고, 염소가 그 소금을 핥도록 방치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것에 불과하지 않나?”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끔찍하다고 한다. 염소의 혀가 사포처럼 거칠어서, 소금물을 계속 핥다 보면 피부를 파고들어 상처를 입히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염소는 만성적인 염분 부족을 겪는 동물이기에, 짠맛을 느끼면 지칠 때까지 멈추지 않는 습성을 지녔다고 한다. 한마디로, 소금으로 양념된 발바닥을 끝도 없이 ‘갈아대는’ 셈이 된다.

더 무서운 건 피부가 벗겨지고 출혈이 시작된 이후다. 우리 몸의 혈액에도 어느 정도 염분이 포함되어 있으니, 염소는 피에서 나는 짠맛을 더 탐닉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더욱더 살점을 깎아낸다는 것이다. 설령 뼈가 드러날 정도의 고통이 찾아와도, 염소가 멈추진 않는다. 이쯤 되면 단순한 ‘간지럼’ 따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지옥 같은 형벌이 된다.

 

로텐부르크의 중세 범죄 박물관

 

 

이 엽기적인 처벌의 장면이 담긴 그림이 독일 바이에른주의 로텐부르크 오프 데어 타우버(줄여서 로텐부르크)에 있는 ‘중세 범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로텐부르크는 중세의 풍경이 잘 보존된 아름다운 성곽 도시로, 로맨틱가도를 따라 여행을 하다 보면 꼭 들르게 되는 명소이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범죄 박물관은 조금은 기묘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독특한 전시관이다.

약 5만 점에 달하는 각종 전시물들을 보면,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나” 싶을 정도의 중세 형벌 도구나 고문 방법이 공개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염소에게 발바닥을 핥게 하는’ 그림은 관람객들의 눈길을 특히 사로잡는다. 그림 속 죄인은 나무 상자에 발목이 고정되어 있고, 발바닥을 염소가 열심히 핥고 있다. 또 뒤에서 아이가 풀 같은 것을 들고 죄인의 얼굴을 건드리는 모습이 함께 그려져 있다. 형벌의 잔혹함과는 별개로, 당시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이것이 매우 ‘효율적’인 처벌 중 하나였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시행되었을까?

 

그렇다면 이런 처벌이 정말로 시행되었을까? 역사적 자료가 거의 없어서 확답을 내리기가 어렵다고 한다. 1502년에 이탈리아의 수도사 겸 법률가였던 프란체스코 브루니 데 산 세베리노가 쓴 「증거와 고문에 관한 논고」라는 문서에서, “중세 유럽 여러 지역과 중동 일부에서 이런 처벌이 행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된 게 거의 유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전해 들은 이야기 수준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학계에서도 ‘확실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설령 실제로 있었다 해도, 이 처벌로 목숨을 잃는 경우는 드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대적으로 경미한 범죄에 대해 실행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제기된다. 그 말대로라면, 죄인을 죽이지 않고도 극도의 고통을 주어 반성을 유도하거나, “이렇게 무서운 벌이 기다린다”는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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