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연안에서 볼 수 있는 ‘오리엔트 말벌'(학명: Vespa orientalis)은 생물계에서 가장 높은 알코올 내성을 가졌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캔맥주의 알코올 도수는 약 5% 정도다. 이 도수로도 취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오리엔트 말벌은 무려 알코올 도수 80%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약간의 취기를 느낀다고 한다. 연구 결과는 2024년 9월 7일자 과학 저널 PNAS에 게재되었다.
사람들이 술을 즐기는 만큼, 자연 속의 생물들도 발효된 과일이나 꽃꿀에서 발생한 알코올을 자주 섭취한다. 발효란, 효모가 꽃꿀이나 과일의 당을 분해해 에탄올을 생성하는 과정이다. 에탄올은 고열량 성분으로, 자연에서 귀중한 에너지원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원숭이, 곤충, 새, 코끼리 등 수십 종의 생물들이 발효된 꽃꿀이나 과일을 섭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생물들은 알코올 내성이 높지 않아 알코올 도수 4% 이상만 되어도 움직임이 느려지거나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인다. 이에 반해, 오리엔트 말벌이 발효된 과일을 즐겨 먹음에도 불구하고, 알코올의 부작용을 전혀 겪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알코올 도수 80%에 ‘살짝 취기’
약 2,000마리의 오리엔트 말벌을 실험실로 데려와 설탕에 에탄올을 섞은 용액을 주었다. 낮은 농도의 알코올부터 시작했으나, 오리엔트 말벌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기에 도수를 20%까지 높였다. 이는 일반적인 발효로 만들어질 수 있는 최대 알코올 농도다.
그러나 오리엔트 말벌은 알코올 도수 20%의 용액을 마셔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연구팀은 더 높은 도수로 실험을 계속했고, 결국 알코올 도수 80%의 용액을 마셨을 때 비로소 오리엔트 말벌이 약간의 취기를 느끼는 증상을 보였다. 이는 다른 생물과 비교해 현저히 높은 내성으로, 같은 조건에서 서양 꿀벌은 완전히 마비되고 24시간 내에 죽고 말았다.
왜 오리엔트 말벌은 알코올에 강한 걸까?
오리엔트 말벌의 체내에서 알코올을 분해하는 ‘알코올 디하이드로제나제(ADH) 유전자’가 다른 생물보다 여러 복제본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러한 유전자 구조 덕분에 오리엔트 말벌은 뛰어난 알코올 내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또한, 오리엔트 말벌의 번식기가 발효가 활발한 10~11월에 겹치기 때문에, 고농도의 발효 과일을 먹으며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기와 같은 부패한 먹이를 섭취할 때에도 항균 작용을 하는 에탄올이 세균 전파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오리엔트 말벌은 자신만의 생존 전략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