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지 않은 일, 잊고 싶지 않은 사람을 정말로 잊지 않고 살 수 있는 미래. 그런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은 실험 초기 단계지만,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거꾸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치매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 아직까지 확실한 치료법이 없는 이 알츠하이머병 치료에 드디어 한 줄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뇌 속 쓰레기 처리 시스템을 되살려 병의 진행을 멈추다
학술지 ‘Signal Transduction and Targeted Therapy’에 게재된 공개 연구 논문에서 뇌의 노폐물 처리 시스템을 활성화해 쥐의 뇌 기능을 회복시키고,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역전시켰다.
핵심은 혈액뇌장벽(Blood-Brain Barrier)이라는 구조의 복원인데, 이 장벽은 말 그대로 뇌로 들어오고 나가는 혈류를 조절하면서, 외부의 독성 물질로부터 뇌를 지키는 문지기 역할을 하는데, 나노기술을 활용해 이 장벽을 복구한 것이다.
뇌를 지키려면, 먼저 청소가 필요하다
이번 연구의 출발점은 아밀로이드 β(Aβ) 라는 단백질 찌꺼기의 축적이 어떻게 신경세포 기능을 방해하는지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건강한 상태라면 혈액뇌장벽은 뇌 속 노폐물을 걸러내는 필터 역할을 하는데, 알츠하이머병이 진행되면 이 장벽이 막히거나, 침입한 물질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게 되어, 독성 단백질이 쌓이기 시작한다.
혈관의 기능이 돌아오면, 뇌 전체가 다시 살아난다
이번 연구를 이끈 카탈루냐 생체공학연구소(Catalan Institute of Bioengineering) 의 신경과학자 주세페 바탈리아(Giuseppe Battaglia)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과정을 하나의 ‘연쇄 반응(chain reaction)’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밀로이드β 같은 독성 물질이 쌓이면 병이 진행되지만, 혈관의 기능이 회복되면 다시 이런 물질을 제거할 수 있게 되어 뇌 전체의 균형이 서서히 회복됩니다.”
뇌의 방어 체계를 되살리면, 스스로를 정화할 힘도 되찾는다는 이야기다.
나노입자로 혈관의 문지기를 다시 깨우다
연구팀은 LRP1(Low-Density Lipoprotein Receptor-related Protein 1) 이라는 혈액뇌장벽의 핵심 분자를 모방한 나노입자를 새로 개발했다. 실험에는 유전적으로 아밀로이드β를 과다 생성하도록 조작된 쥐가 사용되었다.
이 쥐들에게 새로운 나노입자 치료제를 세 번 주사하고, 6개월 동안 행동과 뇌 활동 변화를 관찰했다.
결과는 인간 나이로 60세에 해당하는 생후 12개월의 쥐가 치료를 받고, 90세에 해당하는 18개월 시점에서 건강한 쥐와 동일한 수준의 행동 능력을 보였다.
아직은 인간에게 적용하기 전인 알츠하이머병 치료 단계
물론, 이번 연구는 어디까지나 쥐 실험 단계다. 인간에게 적용하려면 훨씬 더 많은 검증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 접근법이 발전한다면, 아직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에 대한 혁신적인 해결책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위하여
“요즘 들어 자꾸 깜빡깜빡해…”
이런 말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정도에서 끝난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기억이란 결국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조각들이니, 만약 알츠하이머병 치료가 가능하다면, 삶의 행복을 지켜주는 과학의 진화일지도 모른다.
기억을 잃지 않는 미래,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