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는 왜 북극에 살까?

크리스마스이브 밤, 아이들은 쉽게 잠들지 못한다.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장면은 대개 비슷하다. 눈으로 뒤덮인 북극, 그곳을 출발해 전 세계를 누비며 선물을 나눠주는 산타클로스의 모습이다. 굴뚝을 타고 내려와 양말 속에 선물을 넣어두는 장면까지, 이미 머릿속에는 하나의 완성된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다.

아이들이 산타를 북극에 산다고 자연스럽게 믿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너무 오랫동안, 너무 자주 그 장면을 봐왔기 때문이다.

오래된 크리스마스 애니메이션과 그림책, TV 특집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지금도 매년 반복 재생되는 크리스마스 영화들 속에서 산타는 늘 북극에 있다. 랭킨/배스의 고전 애니메이션부터 2003년 개봉한 영화 엘프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형식은 달라도 설정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의심하지 않는다. 산타는 원래 북극에 사는 존재라고.

“사실 산타가 왜 북극에 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면,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설정은 꽤 구체적인 기록을 통해 그 기원을 따라갈 수 있다. 완전히 상상의 산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산타클로스의 주소를 만든 사람, 토머스 내스트

산타클로스가 북극에 산다는 설정이 처음 명확하게 등장한 자료로 알려진 것은 1866년에 발행된 미국 주간지 하퍼스 위클리(Harper’s Weekly)에 실린 한 편의 만평이다. 이 그림을 그린 인물은 토머스 내스트(Thomas Nast)라는 당대의 유명한 정치 풍자 만화가였다.

내스트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의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상징하는 동물, 즉 당나귀와 코끼리를 정착시킨 사람이 바로 그다. 미국 정치 문화의 시각적 언어를 만든 인물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가 산타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시점은 1863년 1월, 미국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내스트는 북군을 지지하는 선전의 일환으로 하퍼스 위클리에 크리스마스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때 참고한 텍스트가 바로 클레멘트 클라크 무어의 1823년 시 성 니콜라스를 찾아온 방문(A Visit From St. Nicholas)이다. 

내스트는 이 시에서 묘사된 산타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했다. 하얀 수염, 붉은 뺨, 인자한 표정, 그리고 언제나 유쾌한 분위기. 우리가 지금 떠올리는 산타의 기본형은 이 시기 내스트의 손에서 거의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만화 속 산타는 북군 병사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둔 아내가 기도하는 사이 굴뚝으로 내려오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산타는 전쟁이라는 현실 속에서 위안을 주는 상징이었고, 동시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캐릭터이기도 했다.

 

산타클로스 북극이라는 설정은 어떻게 굳어졌을까

산타클로스

이 크리스마스 만화들이 큰 인기를 끌자, 내스트는 점점 더 많은 설정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기존 문학 작품에만 기대지 않고, 산타의 세계관을 스스로 만들어 나간 것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산타는 어디에서 오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이었다.

1866년 12월 29일자 하퍼스 위클리에는 산타클로스와 그의 일들(Santa Claus and His Works)이라는 제목의 만화가 실린다. 여러 장면으로 구성된 이 만화의 원형 테두리를 따라 아주 작은 글씨로 ‘Santa Claussville, N.P.’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여기서 N.P.는 North Pole.

이 한 줄의 표기가 결정적이었다. 이후 산타의 거처는 점점 북극으로 고정되기 시작했고, 다른 상상은 설 자리를 잃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내스트가 왜 하필 북극을 선택했는지, 이 아이디어가 전적으로 그의 발상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북극은 여러모로 상징적인 장소였다. 미지의 땅이었고,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공간이었으며, 국경 개념에서도 자유로운 곳이었다. 산타를 현실의 정치와 분리된 보편적 존재로 만들기에는 더없이 적절한 장소였던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만평에서 시작된 설정은 세대를 거치며 반복 재생되고 강화됐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광고와 장식 속에서 북극은 산타의 공식 주소가 됐다. 이제 우리는 그 기원을 따져 묻지 않는다. 너무 오래,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믿어온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은 한 만화가의 선택에서 시작됐다. 산타가 북극에 사는 이유는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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