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단지 앞에 서 있던 소년… 첫사랑의 죽음을 지키던 16살의 뒷모습

※이 글은 실제 이야기를 참고해 재구성한 글이다.

20년 전, 내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던 때의 이야기다.

어느 날 저녁,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단지 앞 공원에서 한 남자아이가 비를 맞으며, 우산도 없이 맞은편 단지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어딘가 기묘하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묘하게 뒤숭숭해질 정도였다.

그때가 밤 8시쯤이었고, 3월의 찬 기운이 아직 남아 있어 꽤나 쌀쌀했는데,
그 아이는 움직이지도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왔고,
1시간쯤 후 창문 밖을 내다보니, 그 아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날은 유난히 피곤해서 일찍 잠들었고, 결국 경찰에 신고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떠 창밖을 보니, 그 아이는 아직도 미동도 없이 거기에 서 있었다.
밤새 내린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정오가 되었을 무렵에도 아이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멀리서 봐도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게 느껴질 만큼 위태로워 보였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져서,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가 그 아이에게 달려갔다.

우산을 씌워주며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니? 무슨 일이야?”

그런 내 말에, 아이는
“감사합니다.”
라는 짧은 말만 남긴 채, 다른 이야기는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다.

그 후로도 아이는 6시간 이상이나 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너무 신경이 쓰였던 나는,
맞은편 단지에 사는 지인에게 연락을 해 보았다.

그리고 그 지인으로부터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소년은, 한 달 전 급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딸의 남자친구였다고 한다.
딸은 16살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소년은 그녀의 가족과 얼굴 한 번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단지 멀리서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 소년은 사랑하는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비 오는 그 자리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리움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16살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의 고통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조여들 만큼 아프다.

지금 그는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날의 그의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비를 맞으며, 맞은편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의 뒷모습.

그 순간의 그 소년은,
청춘의 슬픔과 강인함을 오롯이 품은 채,
정말이지 눈부시도록 멋있었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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