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초, 화려한 예술의 열기로 가득 찬 마이애미 바다에서 기이하고도 장엄한 풍경이 펼쳐졌다.
푸른 파도 아래로 가라앉은 수십 대의 자동차가 줄을 지어 멈춰 서 있었다. 마치 해저 도시의 출퇴근길 정체를 옮겨놓은 듯한 이 초현실적인 장면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개념미술가 레안드로 에를리치(Leandro Erlich)가 빚어낸 거대한 수중 설치 미술다.
이 작품은 예술과 과학, 그리고 생태 복원이 결합하여 탄생한 7마일(약 11km) 길이의 수중 조각 공원, 리프라인(ReefLine) 프로젝트의 야심 찬 서막이다.
마이애미 바다가 산호의 포근한 보금자리가 되다

레안드로 에를리치가 선보인 이 작품의 제목은 콘크리트 코럴(Concrete Coral)이다. 해저 바닥에는 실제 자동차와 똑같은 크기로 제작된 22대의 콘크리트 차량이 배치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재료다. 이 자동차들은 해양 생태계에 무해한 ‘pH 중성’의 특수 콘크리트로 주조되었다.

이 특수 콘크리트는 산호 유생들이 표면에 쉽게 달라붙어 뿌리를 내리고 성장할 수 있도록 설계된 친환경 건축자재다.

작품은 허리케인급의 강력한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해저에 견고하게 고정되었으며, 자동차 보닛 위에는 리프라인의 전문 연구소가 개발한 코럴 록(Coral Lok) 시스템이 장착되었다. 이 장치는 어린 산호 조각들을 스트레스 없이 빠르게 고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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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 무미건조했던 회색 자동차 표면 위로 알록달록한 산호와 해조류가 덮이고, 그 사이를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헤엄치게 될 것이다.


오염의 주범에서 재생의 그릇으로

에를리치가 수많은 소재 중 왜 하필 자동차를 선택했는지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육지 위에서 자동차는 문명의 이기인 동시에 기후 위기를 가속화하는 주범이다.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역설을 끌어낸다. 대기를 오염시키던 자동차가 바닷속에 잠기는 순간, 생명을 잉태하고 보호하는 서식지로 그 운명이 완전히 뒤바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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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라인의 과학 책임자인 콜린 푸드는 이 광경을 두고 “교통체증 위로 숲이 자라나는 듯한 경이로운 장면이 연출될 것”이라며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인간이 만든 인공 구조물을 자연이 서서히 자기 것으로 회수해가는 과정,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이다.
리프라인, 11km에 걸친 수중 예술의 미래

리프라인 프로젝트의 목표는 명확하다. 기후 변화와 수온 상승으로 파괴되어 가는 마이애미 바다의 산호 생태계를 인공 와초(Reef)를 통해 되살리는 것이다.

콘크리트 코럴은 그 긴 여정의 첫 번째 단추일 뿐이다. 리프라인 공원에는 앞으로 더 많은 작가의 작품들이 합류할 예정이다. 2026년에는 카를로스 베탄쿠르트와 알베르토 라토레가 협업한 마이애미 리프 스타가 설치된다.
불가사리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받은 46개의 3D 프린트 별들이 바다와 우주의 공생을 이야기할 것이다. 또한 페트록 세스티가 푸른 고래의 심장을 형상화한 오케아노스의 심장 역시 해저의 일원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