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는 북극, 살이 찌는 북극곰?

지구 온난화가 본격화되면서 북극곰은 오랫동안 무너져 가는 생태계의 상징처럼 소비돼 왔다. 뼈가 도드라질 만큼 여윈 몸으로, 금세라도 부서질 듯한 해빙 위에 매달린 채 사냥을 시도하다 실패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은 북극곰의 미래가 이미 정해진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런데 이 익숙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 있다.

 

노르웨이 북쪽에 위치한 스발바르 제도의 북극곰

노르웨이 북쪽에 위치한 스발바르 제도의 북극곰

스발바르 제도에는 약 3천 명 남짓한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이 주변 해역에 서식하는 북극곰의 수가 사람 수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중 약 300마리는 계절 이동 없이 1년 내내 군도에 머문다.

물론 북극 전체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여전히 엄중하다. 해빙 면적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고, 이는 북극곰에게 곧 생존 기반의 붕괴를 말한다. 사냥터가 사라진다는 것은 생존 그 자체가 위협받는다는 뜻이다. 스발바르 제도 역시 이런 변화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북극곰 집단은 개체 수가 눈에 띄게 줄지 않았고, 오히려 건강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연구는 국제 학술지 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됐고, 연구자들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론이었다. 논문의 제1저자이자 노르웨이 극지연구소(NPI) 수석 연구원인 욘 아에르스는 “2003년 연구에 참여했을 당시에는 북극곰이 훨씬 마르고, 개체 수도 줄어들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공동 저자이자 캐나다 앨버타대학교 생물과학과 교수인 앤드루 데로셔 역시 이 연구가 보여주는 핵심은 ‘지역별 차이’라고 강조한다. 같은 기후 변화 속에서도 북극곰 개체군의 반응은 지역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스발바르 제도가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스발바르 제도 인근 바렌츠해 지역은 기후 변화의 최전선에 가깝다. 1980년 이후 이 지역의 평균 기온은 10년마다 최대 2℃씩 상승해 왔다. 1979년부터 2014년까지 해빙이 서식지로 기능하던 기간은 매년 평균 4일씩 줄어들었다. 이는 다른 북극곰 서식지와 비교해도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다.

이처럼 가혹한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바렌츠해 북극곰의 개체 수는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해 왔다. 2004년 실시된 조사에서 약 2,650마리가 확인된 이후, 뚜렷한 감소 추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1992년부터 2019년까지 스발바르 제도에서 관측된 성체 북극곰 770마리의 신체 구성 데이터를 분석했다. 27년에 걸친 자료를 바탕으로, 지방 축적 정도를 나타내는 신체구성지수(BCI) 변화와 해빙이 완전히 사라진 일수 사이의 관계를 비교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해빙은 줄어들었지만, 북극곰의 체지방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었다. 특히 2000년 이후 평균 BCI가 눈에 띄게 상승했다.

이 현상은 기존 생태학적 상식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연구팀은 몇 가지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나는 인간의 야생동물 보호 정책이다. 순록이나 바다코끼리 같은 육상·연안 동물에 대한 과도한 사냥이 줄면서, 북극곰이 육지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먹잇감이 회복됐을 가능성이다.

또 다른 가설은 해빙 감소로 인해 북극곰의 주식인 바다표범이 제한된 해빙 지역에 몰리면서, 오히려 사냥 효율이 높아졌다는 해석이다. 먹잇감이 분산되지 않고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 적은 이동으로도 많은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조건이 영원히 유지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조건이 영원히 유지될 수는 없다

해빙이 더 줄어들면, 북극곰은 사냥터를 찾기 위해 훨씬 더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우호적인 환경은 빠르게 사라질 수 있다. 실제로 다른 지역의 북극곰 개체군에서는 이미 이런 한계가 관측되고 있다.

연구진은 스발바르 제도의 북극곰이 역경 속에서도 살아남아 온 이유를 명확히 이해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생명체는 때로 극단적인 환경 변화 속에서도,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스스로의 생존 경로를 찾아간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극곰의 위기가 해소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북극권 전반에서 북극곰이 처한 상황은 여전히 심각하다. 스발바르 제도의 사례는 예외적인 이야기일 뿐, 기후 위기의 본질을 가려주는 증거는 아니다. 오히려 이 대비는 지금 우리가 마주한 변화의 복잡성과, 단순한 이미지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을 더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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