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방지와 장수 기술에 거액을 투자하는 억만장자들의 행보

2024년 어느 겨울 아침, 샌프란시스코의 한 조용한 연구소에서는 뿌연 시험관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연구원들의 발걸음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그들이 집중하는 것은 단순한 신약이나 의료기술이 아니다. 눈길을 사로잡는 실험용 쥐들과 현미경 아래 세포들, 그리고 벽면 가득 붙은 데이터 그래프가 보여주는 목표는 하나, ‘장수’였다. 젊음을 유지하거나 노화를 늦추는 기술, “사람을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게 하는” 기술은 최근 전 세계 초부유층 사이에서 가장 뜨겁게 떠오른 투자 분야 중 하나다.

 

억만장자들이 장수 테크놀로지에 돈을 쏟아붓는 현실

 

사실, 돈 많은 사람들이 신기술에 투자하는 일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연명’을 넘어 ‘회춘’까지 꿈꾸는 흐름은 이전과 다른 파장을 예고한다. 뉴욕포스트는 이 장수 산업의 가파른 성장세에 주목해 한 인물을 인터뷰했다. 저비용으로 깨끗한 물을 공급하려는 스타트업 ‘SmartWater Group’을 창업한 필 클리어리(Phil Cleary)라는 사람이다. 그는 거대한 부를 쥔 테크 억만장자들이 장수 테크놀로지에 돈을 쏟아붓는 현실을 ‘두렵다’고 표현했다. 왜일까?

클리어리의 우려는 명확하다.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를 보면, 늙지 않고 오래 사는 약은 결국 그것을 살 수 있는, 즉 막대한 재력을 보유한 극소수 특권층에게만 돌아갈 것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일부 사람들’이란 단순한 부자를 넘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자산가들을 뜻한다. 그는 이들이 젊음과 수명을 돈으로 사들이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암시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가 진정 두려워하는 부분이다.

클리어리는 단언한다. 인류가 진짜로 관심 가져야 할 문제는 이미 기성세대가 누리고 있는 삶을 조금 더 늘리는 것이 아니라, 아직 삶의 출발선에 선 아이들이 18세 생일까지 무사히 살아남도록 하는 것이라고. 그는 “이미 세상을 알고, 자녀를 두고, 자신의 욕망을 파악한 특권층 몇몇의 연명보다,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아이들의 안전한 성장이 인류 전체에 훨씬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전 세계 곳곳에는 깨끗한 물 한 모금, 안전한 의료 서비스 한 번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도 극소수 억만장자들은 장수 기술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노화 방지 기술은 곧 ‘신 투자처’이고, 그들을 둘러싼 연구자와 과학자들은 마치 새로운 금광을 파헤치는 광부처럼 더 깊은 곳, 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클리어리는 이 방향이 썩 내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차라리 그 돈을 아이들이나 공공의료, 환경 개선 같은 인류 전체에 득이 되는 곳에 써달라”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노화 방지와 장수 기술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억만장자들

 

이런 현실 속에서 가장 앞서가는 인물 중 하나가 IT 기업가 브라이언 존슨(Bryan Johnson)이다. 47세인 그는 연간 200만 달러를 안티에이징(노화 방지)에 쏟아붓는다. 집 안 유리 전부에 자외선 차단 처리를 해두고, 스스로를 ‘흡혈귀’ 같다고 농담한다. 장수 보조제 ‘Blueprint’를 개발해 팔기도 하고, 기증받은 지방을 얼굴에 주입해 탄력을 되살리려다 알레르기 반응으로 얼굴이 부어오른 모습을 X(옛 트위터)에 공개하기도 한다. 돈도, 배짱도, 젊어지고자 하는 욕망도 누구보다 강한 이 남자는, 어쩌면 다가올 시대를 예고하는 상징적 인물일지 모른다.

물론 존슨만이 아니다. OpenAI의 CEO 샘 알트먼(Sam Altman)은 수명을 10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스타트업 Retro Biosciences에 1억8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는 노화를 되돌리겠다는 바이오테크 기업 Altos Labs에 30억 달러를 쏟아부었고, PayPal 공동창업자 피터 틸(Peter Thiel)은 “2030년까지 90세를 새로운 50세로 만들겠다”는 단체에 후원하고 있다. 이런 인물들이 쏟아붓는 돈의 총합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가끔 PC를 교체할 때 AI 대응 모델을 고려해야 한다는 광고 문구가 스쳐 지나가듯, 장수 산업의 등장은 신기술이 밀려드는 시대적 조류일 뿐일까? 아니면 우리가 꼭 한번 멈춰 서서 물어봐야 할 윤리적 문제일까?

분명한 건, 이런 기술이 성공한다 해도 이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저 오래 사는 것이 아닌, ‘영원히 젊게 사는’ 꿈을 실현하려면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고, 그 자본이 있는 곳으로 혜택이 집중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고 싶다. 과연 인류가 진짜로 원하는 미래가 이런 모습일까?

사실, 돈으로 못 살 것은 없다고 말하는 시대를 오래전에 지나왔다. 하지만 생명과 젊음까지 돈으로 거래하는 시대가 온다면, 그것은 단순히 재화가 오가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인간 존재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일일지 모른다. 세계 곳곳의 극빈 지역에서는 아이들이 굶어 죽고 병으로 쓰러지는 이 순간에도, 한편에서는 거대한 부를 가진 이들이 조금 더 오래 젊게 살기 위해 수백만,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이것이 바로 클리어리가 두려워한 미래, 그리고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VIA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