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빙하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빙하 붕괴 속도다.
지금, 남극 빙하는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남극 반도의 동쪽에 자리한 남극 헥토리아 빙하가, 2022년 11월부터 단 두 달 사이에 무려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바다와 맞닿은 빙하의 전면부가 약 8km나 내륙 쪽으로 후퇴한 것으로, 이는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빠른 속도로 무너진 사례로 기록됐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캠퍼스 연구진은 “이와 같은 붕괴가 더 큰 빙하에서도 일어난다면, 전 세계 해수면 상승 속도를 급격히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2025년 11월 3일자 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Nature Geoscience)에 실렸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붕괴하는 남극 헥토리아 빙하

콜로라도 대학교 환경과학협동연구소(CIRES)의 테드 스캔보스(Ted Scambos)박사와 제1저자인 나오미 오치와트(Naomi Ochwat) 박사는 원래 2002년에 무너진 인근의 빙붕의 영향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위성 영상을 분석하던 중, 남극 헥토리아 빙하의 이미지에 이상한 변화를 발견했다. 빙하가 평소보다 수백 배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남극 반도 빙하는 1년에 수백 미터 정도 후퇴한다. 하지만 헥토리아 빙하는 2022년 11월부터 불과 두 달 만에 약 8km나 물러나 전체 면적의 절반 가까이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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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 오치와트 박사는 “데이터를 처음 봤을 때는 믿기 어려웠습니다. 현장을 항공 촬영해보니, 빙하가 있던 곳이 마치 거대한 만처럼 휑하게 열려 있었어요. 그 장면을 보며 자연의 힘이 얼마나 압도적인지를 실감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빙하 붕괴의 결정적 원인은 바닷속 지형
그렇다면 남극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연구진은 위성 영상과 항공 데이터를 함께 분석해 남극 헥토리아 빙하가 어떻게 무너져 갔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추적했다. 그 결과, 빙하 아래의 해저 지형이 붕괴의 방아쇠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남극 헥토리아 빙하는 평평하게 펼쳐진 해저 지면 위에 놓여 있었고, 마치 미끄럼틀 위의 얼음이 천천히 바다 쪽으로 밀려나듯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빙하가 어느 정도 얇아지면, 일부가 해저 바닥에서 떨어져 바다 위로 떠오르는 부분이 생긴다.
그 틈으로 바닷물이 스며들면서, 아래쪽에서부터 얼음을 밀어 올리고 서서히 갈라지게 만든다. 이때 빙하 하부에서 생긴 균열이 상부의 갈라진 틈과 이어지면, 거대한 얼음 판이 연쇄적으로 부서져 바다로 떠내려가는 빙산 분리 현상이 발생한다.
이 과정이 순식간에 이어지며, 헥토리아 빙하의 전면이 붕괴되고 전체의 절반 가까이가 단기간에 사라진 것이다.
해빙의 소멸이 붕괴를 가속시켰다
헥토리아 빙하의 급격한 후퇴에는 해저 지형뿐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한 해빙 손실도 영향을 미쳤다. 2022년, 한때 만을 덮고 빙하를 보호하던 두꺼운 해빙이 바다 쪽으로 떨어져 나갔다.
이 자연의 방패가 사라지자, 따뜻해진 해수가 직접 빙하의 앞부분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파도의 충격과 침식 작용이 더 강해져, 빙하 붕괴는 한층 빨라졌다. 특히 바다 위로 돌출된 빙설이 사라지면 빙하 전체가 지탱력을 잃고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남극의 다른 빙하들도 위험할 수 있다
헥토리아 빙하의 면적은 약 298㎢로 매우 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남극 전체로 보면 비교적 소규모 빙하에 속한다. 현재 남극에는 모든 얼음이 녹을 경우, 전 지구 해수면을 약 58미터 상승시킬 만큼의 막대한 빙하가 존재한다. 그만큼, 전 세계 해안 도시와 저지대 주거지가 물에 잠길 위험이 커진다.
연구진은 앞으로 빙하 하부의 지형 조사와 위성 감시를 강화해 이러한 붕괴 연쇄를 막기 위한 장기 관측을 이어갈 계획이다. 빙하가 무너지는 속도는 자연의 경고음이다. 그 소리를, 우리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