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대륙은 인류에게 있어 가장 가혹한 환경 중 하나이며, 역사상 사람이 정착해 살았던 적도 없다.
그런데 1985년에 남극의 해변에서 1819년에서 1825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젊은 여성의 인골이 발견됐다.
공식적으로 인류가 남극 대륙을 처음 발견한 건 1820년.
당시 이 땅에 사람이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여성이 그 이전에 남극에서 죽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발견자인 칠레 과학자는 몇 가지 가설을 제시했지만,
사건의 진실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이번엔 남극 대륙 발견의 역사와 함께, 이 수수께끼 같은 인골 사건을 들여다보자.
남극 대륙에서 발견된 의문의 인간 두개골
1985년 1월 7일 오후 4시 35분.
칠레대학교 생물학·자연과학 교수였던 다니엘 토레스 나바로(Daniel Torres Navarro)는
남극의 야마나 해변(Yamana Beach)에서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던 중
바위 섞인 모래사장에서 반쯤 묻힌 사람의 두개골을 발견한다.
발견된 두개골은 정수리에서 후두부에 걸친 일부였고,
표면은 미세한 조류가 자라면서 초록색을 띠고 있었다.
수거 당시, 상악 일부와 보존 상태가 양호한 몇 개의 이도 함께 발견되었지만
앞니 두 개, 하악, 기타 다른 뼈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후 정밀 분석을 통해
해당 두개골은 젊은 여성의 것이며,
1819년에서 1825년 사이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남극 대륙 발견의 역사
현재 ‘남극 대륙이 공식적으로 발견된 해’로 알려진 해는 1820년이다.
이 해, 남극 해안선을 항해한 여러 탐험가들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남극 대륙을 목격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1820년 1월 28일, 러시아 제국 해군 장교 파비안 고틀리프 폰 벨링스하우젠(Fabian Gottlieb von Bellingshausen)이
남위 69도 21분, 서경 2도 15분 지점에서
“매우 높고 험준한 얼음 절벽”을 목격했다고 항해 일지에 남겼다.
이 기록은 인류가 남극 대륙을 처음 시각적으로 포착한 공식 증거로 여겨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역사학자와 지리학자들은 “벨링스하우젠이 남극 발견자”라고 본다.
하지만 같은 해 1월 30일,
영국의 에드워드 브랜스필드,
그리고 11월 17일엔 미국의 너새니얼 파머 역시 남극을 목격했다는 기록이 있어
“남극 최초 발견자는 누구인가”에 대한 평가는 국가마다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게다가 1821년 2월 7일,
미국의 바다표범 사냥꾼 존 데이비스(John Davis)가
남극 대륙의 일부로 여겨지는 휴즈 만(Hughes Bay)에 상륙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의 항해 일지에는 “상륙했다”는 문장이 명확하게 남아 있지만
그 위치가 정말 남극 본토였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어
‘남극 최초 상륙자’라는 타이틀은 확정되지 않았다.
1820년 이전에도 남극을 접한 기록이?
한편, 1820년보다 더 이른 시점에
인류가 남극에 접근했다는 기록이나 전승도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773년,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이
남극권(남위 66.5도 이남)을 항해한 것이다.
제임스 쿡은 두꺼운 빙벽에 가로막혀
남극 본토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본토로부터 약 240km 떨어진 지점까지 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항해일지에
“설령 이 앞에 대륙이 존재한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라 적었다.
이보다 훨씬 앞서도
남극권의 존재를 암시하는 전승과 보고는 존재해왔다.
후이 테 랑기오라(Hui Te Rangiora) (7세기경)
폴리네시아의 항해자로, 마오리 신화에 따르면
“태양이 들지 않는, 안개와 얼음의 세계”를 여행했다고 전해진다.
이 지역은 남극권 바다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남극 ‘본토’에 도달했다는 증거는 없다.
16~18세기 유럽 항해자들의 관측 기록
1599년 네덜란드의 디르크 헤르릿츠,
그리고 1819년 침몰한 스페인 선박 ‘산 텔모(San Telmo)’ 등
남극권 근해를 항해했거나 남극 대륙에 접근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들이 정확히 어떤 육지를 보았는지, 남극 본토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례는
‘남극권’이나 ‘남쪽 얼음 바다’와 관련된 접촉일 뿐,
지리적 정확성과 실증적 증거가 부족해
역사적으로 ‘남극 대륙 발견’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1985년 남극 해안에서 발견된 여성 인골이
만약 1820년 이전의 것이라면,
인류의 남극 도달 역사 자체를 완전히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젊은 여성은 왜 남극에 있었을까? 3가지 가설
남극 대륙이 ‘공식적으로’ 발견되기 전
극한의 땅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가능성이 있는 이 여성.
도대체 어떻게 그곳에 도착했을까?
발견자 나바로 교수는 다음과 같은 3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바다표범 사냥꾼 무리에 동행했을 수도…
19세기 초, 이미 남극 인근 해역에는
바다표범을 사냥하는 배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 배에 여성이 탑승해 있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사고, 병, 혹은 일부러 버려졌을 가능성까지도 고려되고 있다.
항해 중 사망 후, 바다에 수장 → 해안에 떠밀려온 가설
당시 해상 항해 중 누군가 사망하면
그 시신은 바다에 수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여성도 배 위에서 죽었고,
그 시신이 해류나 폭풍에 휩쓸려
남극 해변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야생조류에 의해 시신이 분산되었을 수도…
남극 해변에는 시체를 먹는 조류가 여럿 서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거대군함갈매기(Macronectes giganteus)
남극큰도둑갈매기(Catharacta lonnbergi)
남방큰갈매기(Larus dominicanus)
눈도요(Chionis alba)
등이 있다.
이들이 시신을 뜯어먹으며 흩어졌고,
그 결과 머리뼈만 남았을 수 있다는 추측이다.
지금도 미궁 속인 ‘남극 인골 미스터리’
나바로 교수와 조사팀은
이후 인근 지역에서 대퇴골도 추가로 발견했지만,
그 외의 유골은 아직 찾지 못했다.
전신의 뼈는 이미 모래에 묻히거나 풍화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 수도 있다.
이번 인골 발견은
남극의 역사 자체에 새로운 의문을 던지게 된 사건이다.
“인류는 정말 1820년 이후에야 남극에 도달한 걸까?”
“아니면, 역사의 기록에 남지 않은 누군가가
이미 이 땅에 다녀간 적이 있었던 건 아닐까?”
나바로 교수는
“지금까지 확인된 건 이 인골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 유골은
남극 해변에 남겨진 ‘답 없는 질문’이자
해결되지 않은 수수께끼로,
오늘도 고요한 얼음 위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