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서 태어난 11명의 아이들|얼음 대륙에 인간의 발자취를 남기다

남극이라고 하면, 끝없이 펼쳐진 얼음과 눈, 그리고 연구자나 탐험가, 극소수의 부유한 관광객만이 발을 들일 수 있는 땅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극에서 태어난 아이가 11명 있다.

이 아이들은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남극 기지에서 태어났으며, 지구상에서 가장 남쪽에 태어난 인간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남극은 어느 나라의 영토도 아니기 때문에, 남극 시민권”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의 국적은 부모의 출신국에 따라 결정되었다.

1978년, 남극에서 처음으로 아기가 태어난 이후, 두 나라는 자국의 영유권을 상징적으로 주장하기 위해 가족 단위로 남극에 파견하기 시작했다. 얼음 폭풍과 혹한, 고립된 환경 속에서 아이를 낳는 일은 목숨을 건 도전이었지만, 그만큼 정치적 상징성이 컸다. 그러나 지금은 안전상의 이유로 임산부가 남극 기지로 파견되는 일은 없으며, 새로운 남극 출생자는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다.

 

남극에서의 첫 번째 탄생 – 아르헨티나의 에스페란사 기지

1978년 1월 7일, 아르헨티나의 에스페란사 기지에서 첫 번째 남극 아기, 에밀리오 마르코스 팔마(Emilio Marcos Palma)가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 실비아 모레로는 만삭의 몸으로 남극으로 건너갔고, 아버지 호르헤 에밀리오 팔마 대위는 주둔 부대의 지휘관이었다.
그의 탄생은 남극 대륙에서 태어난 첫 아기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이 지역은 영국도 영유권을 주장하던 곳이었기에, 이론적으로는 영국 해외시민권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로부터 불과 몇 달 뒤, 1978년 5월 27일에는 같은 기지에서 남극 최초의 여자아이 가 태어났다. 이름은 마리사 데 라스 니에베스 델가도(Marisa de las Nieves Delgado).
시속 150km의 눈보라 속에서 태어난 그녀는 당시 군의관 카를로스 가르세란과 아버지 네스토르 델가도 군조의 협력으로 무사히 세상에 나왔다.
아르헨티나의 신문들은 남극의 첫 소녀 출산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성장했지만, 훗날 이렇게 말했다.

“눈 위에서 놀던 기억은 없어요. 하지만 그것이 제 이야기이고, 제 정체성이죠.”

현재 그녀는 뉴욕에 거주하며, 같은 남극 출신자들과 함께 네이티브 남극 재단(Native Antarctica Foundation)을 세워, 남극을 사람이 살아본 땅으로 기록하고 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혹한 속에서 이어진 출산의 기록들

1979년 9월 21일에는 루벤 에두아르도 데 카를리(Ruben Eduardo De Carli)가 같은 기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26세의 육군 기술자, 어머니는 유치원 교사였다. 그는 8개월 만에 태어난 미숙아였으며, 출산은 매우 위험했다.
그는 훗날 “내 탄생은 기적이었다. 의사들은 내가 죽을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같은 해 10월 11일에는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소사(Francisco Javier Sosa) 가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요리사, 어머니는 남극사를 연구하는 교수였다. 그는 나중에 미국으로 이주해 플로리다에서 셰프로 일하며 세 자녀를 두었다.

“남극에서 태어난 건 나에게 큰 의미가 있어요. 그건 정말 특별한 일이죠.”

이후 1980년 1월, 2주 간격으로 두 명의 아이가 더 태어났다.
1월 14일에는 실비아 아날리아 아르누일(Silvia Analia Arnuil), 1월 24일에는 호세 마누엘 바리야데스 솔리스(Jose Manuel Balladares Solis) 가 태어났다.

특히 바리야데스의 출산은 화재로 시설을 잃은 뒤, 장비도 거의 없는 환경에서 이뤄졌다.
의사들은 분만 도구가 없어 흡입기 대신 ‘네뷸라이저’를 개조해 출산을 도왔다.
그는 훗날 “나는 정치의 산물이 아니라 운명의 결과였다”고 말했다.

1980년 2월에는 루카스 다니엘 포세(Lucas Daniel Posse) 가 태어났고, 1983년에는 마리아 솔 코센사(Maria Sol Cosenza) 가 태어났다.
코센사는 나중에 멕시코로 이주해 사회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으며, “마법 같은 땅에서 태어났다는 게 내 자부심이에요”라고 말했다.

 

칠레의 도전과 마지막 남극인

1984년, 칠레 역시 아르헨티나를 따라 가족을 남극 기지로 파견했다.
같은 해 11월 21일, 킹조지섬의 에두아르도 프레이 모랄바 기지 에서 후안 파블로 카마초 마르티노(Juan Pablo Camacho Martino) 가 태어났다.
그는 남극에서 잉태되어 남극에서 태어난 유일한 인간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2월 2일에는 기셀라 코르테스 로하스(Gisela Cortes Rojas),
1985년 1월 23일에는 이그나시오 알폰소 미란다 라그나스(Ignacio Alfonso Miranda Lagunas)가 태어났다.
미란다의 출산이 남극 대륙에서의 마지막 기록된 출산이 되었다.

 

7년간 남극에서 태어난 11명의 아이들

출생일 이름 국적
1978년 1월 7일 에밀리오 마르코스 팔마 아르헨티나
1978년 5월 27일 마리사 데 라스 니에베스 델가도 아르헨티나
1979년 9월 21일 루벤 에두아르도 데 카를리 아르헨티나
1979년 10월 11일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소사 아르헨티나
1980년 1월 14일 실비아 아날리아 아르누일 아르헨티나
1980년 1월 24일 호세 마누엘 바리야데스 솔리스 아르헨티나
1980년 2월 4일 루카스 다니엘 포세 아르헨티나
1983년 (날짜 불명) 마리아 솔 코센사 아르헨티나
1984년 11월 21일 후안 파블로 카마초 마르티노 칠레
1984년 12월 2일 기셀라 코르테스 로하스 칠레
1985년 1월 23일 이그나시오 알폰소 미란다 라그나스 칠레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가족을 남극으로 보내고, 그곳에서 사람이 실제로 살고,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근거로 자국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려 했다.
폭풍, 화재, 고립 같은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가족의 존재는 남극에 대한 국가적 참여의 증거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1985년 이후로는 더 이상 남극 출산 기록이 없다.
지금의 남극은 군사적 목적이 아닌 과학 연구와 국제 협력의 장소로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1959년, 12개국이 서명한 남극조약(Antarctic Treaty) 은 군사활동을 금지하고, 과학 연구의 자유를 보장하며, 영유권 주장을 동결했다.
현재는 50개국 이상이 조약에 참여하고 있으며, 남극은 인류의 공동 자산으로 관리된다.

따라서 남극에서 태어난 아이가 남극 국적을 가질 수는 없지만,
그들은 여전히 얼음 대륙에 인간의 이야기를 새긴 증인으로 남아 있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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