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가 우리 식탁에 오를 음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까? 단순히 “더워진다”는 걸 넘어, 앞으로 우리는 80억, 90억, 더 나아가 100억 명까지도 먹여 살려야 할지도 모르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수십억 인구의 배를 채우는 쌀, 밀, 옥수수 같은 작물들이 기온 상승과 극단적 기상 현상, 그리고 대기 중 증가하는 이산화탄소(CO2)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다.
여기서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다시 말해 미래의 지구에서 기후 변화가 농작물 수확량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들여다보려 한다.
기후 변화가 농업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
첫째, 대기 중 CO2가 증가하면 식물이 “탄소 비료 효과(carbon fertilization)”를 누릴 수 있다.
밀이나 쌀처럼 ‘C3 작물’이라 불리는 친구들은 CO2가 많아지면 더 잘 자란다. 반면 옥수수, 기장, 수수 같은 ‘C4 작물’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이들은 보통 CO2 늘어난다고 크게 이득 보지 않는데, 가뭄이라도 겹치면 그때서야 약간의 이익이 생기는 정도다.
둘째, 기온 상승 문제다.
온도가 오른다고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작물마다 ‘최적 기온’이라는 게 있고, 이보다 낮은 곳에서는 기온이 조금 오르면 오히려 수확량이 오를 수도 있다. 주로 서늘한 온대 지방의 농부들에게는 적당한 온난화가 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더운 열대나 아열대 지방에선 얘기가 다르다. 거기선 작물이 이미 최적 기온을 넘겨 더운 상태라 추가로 온도가 오르면 수확량이 뚝 떨어진다.
셋째, 물 문제다.
물이 너무 없거나(가뭄), 너무 많거나(홍수, 침수) 하면 수확량이 크게 줄어든다. 기후 변화가 이런 극단적 기상 현상을 빈번하게 만들면, 안정적인 식량 생산은 더 어려워진다.
결국 수확량 변화는 이 세 가지 요인이 뒤엉켜 나타난다. 한쪽은 플러스, 한쪽은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도 있고, 서로 상쇄하거나 더 강화하기도 한다. 그래서 “CO2 증가로 작물 풍년!”처럼 한 면만 강조하는 주장도 있고, “기온 상승으로 식량 생산 붕괴!”처럼 반대편 극단만 내세우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지역별, 작물별로 천차만별이고, 여기에 가뭄, 홍수 같은 극한 상황까지 겹치면 얘기는 더 복잡해진다.
그렇다면 전 지구적 관점에서 미래 수확량은 어찌 될까?
이건 작물 종류, 지구 온난화 정도(이는 결국 우리가 탄소 배출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려 있다), 재배 지역, 그리고 우리가 어떤 적응책을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아직 적응 얘기에 들어가기 전이니, 우선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부터 살펴보자.
연구자들이 다양한 기후 시나리오를 돌려본 결과, 옥수수는 확실히 손해가 난다. 세계 평균 기온 상승을 2°C 이하로 억제한 비교적 낙관적인 시나리오(RCP2.6)에서도 전 세계 옥수수 수확량은 약 6% 감소가 예상된다. 반면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RCP8.5, 약 3~5°C 상승)에서는 24%나 줄어들 수 있다. 이건 아무런 적응 노력도 하지 않았을 때 가능한 최악의 경우를 보여주는 것이다. 옥수수는 탄소 비료 효과도 별로 못 누리고, 주로 더운 지역에서 자라니까 온난화 직격탄을 맞는 셈이다.
반면 밀은 상황이 다르다. 탄소 비료 효과를 제대로 만끽하는 ‘C3’ 작물이라 기온 상승의 일부 부담을 CO2 증가가 상쇄해준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전 세계 밀 수확량은 오히려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2°C 온난화 시나리오에서 CO2 효과가 없으면 밀 수확량이 6.6% 줄겠지만, 이 효과를 넣으면 1.7% 증가로 바뀐다는 연구가 있다. 유럽 겨울 밀도 마찬가지다. CO2 효과를 제외하면 수확량이 감소하지만, 이를 포함하면 오히려 증가한다.
쌀과 대두는 이 둘 사이 어딘가에 있다. 고온으로 인한 피해와 탄소 비료 혜택이 어느 정도 상쇄되어, 전 세계적으로 뚜렷한 증가나 감소 방향을 잡기 어렵다. 다만 지역별로 모델 일치도가 높은 곳은 좀 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지역별로 보면, 대체로 고위도나 온대 지역 농민들은 피해가 덜하거나, 심지어 수확량 증가 혜택을 누릴 수도 있다. 반면 열대나 아열대 지역의 농민들은 이미 더운 기후에서 더 덥게 만드는 온난화 때문에 수확량 감소가 클 것으로 보인다. 옥수수처럼 탄소 비료 효과를 거의 못 보는 작물을 키우는 지역이라면 상황은 더욱 나쁘다.
이런 불평등한 영향은 식량 가격 변동성과 식량 안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옥수수, 기장, 수수 같은 작물이 주식인 빈곤 지역에서 큰 타격이 예상된다. 이들 지역은 이미 가난하고 농업 생산성이 낮은데, 기후 변화까지 겹치면 굶주림과 빈곤이 더 심화될 수 있다. 한편, 탄소를 많이 배출해온 부유한 나라들 중 일부는 밀 같은 작물에서 이득을 볼 수도 있어, 기후 변화가 가져오는 불평등한 현실이 드러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기후 변화는 큰 압박이지만, 농업 생산성은 기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미 전 세계에 ‘수확량 격차’라는 것이 존재한다. 즉, 지금도 기술, 좋은 종자, 비료, 관개 등을 제대로 활용하면 현재 수확량보다 훨씬 늘릴 수 있는 잠재력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케냐의 옥수수 농가를 보자. 지금은 헥타르당 1.4톤 정도 생산하지만, 최적 기술을 쓰면 4.2톤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기후 변화로 최악의 경우 20~25% 감소(약 0.3톤 하락)가 온다고 해도, 현재 가지고 있는 격차(2.8톤)보다 훨씬 작다. 다시 말해, 기후 변화로 인한 타격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발전의 여지가 있다.
물론 이것이 쉽게 저절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기술 투자가 필요하고, 새로운 종자 개발, 관행 개선, 그리고 기후 변화 완화를 위한 노력도 해야 한다. 하지만 기후 변화가 가져올 충격을 완화하면서도 수확량을 끌어올릴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바로 이런 “적응”이 다음 3부 글의 주제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 식량 시스템을 개선하고 농민을 보호할 수 있는지 본격적으로 고민해볼 차례다.
참고로, 과일, 채소, 콩류 같은 비주식 작물의 경우 연구가 적지만, 대체로 CO2가 늘면 수확량이 어느 정도 증가하고, 4°C 같은 극단적 온난화 시나리오에서는 수확량 변동이 매우 복잡해진다. 온도 상승이 심한 더운 지역에선 감소, 비교적 서늘한 지역에선 증가하는 식이다. 결국 이런 작물들도 지역별 편차가 커질 것이고, 이는 식품 가격과 공급, 그리고 영양 측면에 큰 의미를 갖는다.
정리하자면, 기후 변화는 단순한 “수확량이 오르느냐 내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과 작물마다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어떤 곳은 탄소 비료 효과 덕분에 웃을 수 있지만, 다른 곳은 혹독한 기후로 고통받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아직 손에 쥔 카드가 남아 있다. 기술, 제도 개선, 품종 개발, 농법 혁신 등을 통해, 더 어렵고 더운 미래에서도 식량 생산을 유지하고 확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