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비극, 프랭클린 원정대의 식인 흔적과 운명

1845년에 영국에서 북극해로 출발한 프랭클린 원정대의 탐험 항해는 1847년, 캐나다 북극권의 빅토리아 해협에서 얼음에 갇히며, 결국 129명의 대원 전원이 실종되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했다. 이후 사망한 대원들의 유골은 1세기 이상 북극의 섬 해안에 흩어져 있으며, 자연에 의해 풍화되었다.

그런데, 이들 유골 중 일부에서는 식인 행위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원정대의 최후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혹독했는지를 보여준다. 캐나다 과학자들의 오랜 조사 끝에, 식인 행위로 희생된 대원 중 한 명의 신원이 유골에서 밝혀졌다.

 

에레버스 호의 제임스 피츠제임스 선장이었다

 

 

신원이 밝혀지고, 식인 행위의 희생자였음이 확인된 인물은 에레버스 호의 선장, 제임스 피츠제임스였다.

 

프랭클린 원정대의 비극

 

氷に阻まれ身動きが取れなくなったフランクリン探検隊の船

 

1845년, 존 프랭클린 경은 북극권의 북서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에레버스 호와 테러 호, 두 척의 배와 129명의 승무원을 이끌고 영국을 출발했다. 이 항해가 성공하면, 북극 제도를 통해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유럽과 아시아 간의 최단 경로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항해 1년여 만에 캐나다 북극권의 킹 윌리엄 섬 인근의 빅토리아 해협에서 두 척의 배는 얼음에 갇혔다. 대원들은 얼음이 녹기를 기대하며 한동안 배에 머물렀으나, 1847년 존 프랭클린 경이 사망하자, 남은 대원들은 배를 버리고 캐나다 본토를 향해 절망적인 여정을 떠났다.

에레버스 호를 이끌던 제임스 피츠제임스 선장 역시 105명의 생존자를 이끌고 북극권에서 탈출을 시도했으나, 누구도 살아 돌아오지 못한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테러 호도 마찬가지로 전원 생환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누이트의 증언으로 선체와 유골을 발견

 

1848년, 원정대를 찾기 위한 수색대가 파견되었으나, 36번의 수색 작업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이누이트의 구전에 의해 두 척의 배의 정확한 위치가 밝혀졌으며, 선체 잔해는 2014년과 2016년에야 비로소 발견되었다.

 

 

승무원 약 20명의 유골은 그보다 훨씬 이전에 누나부트 준주 킹 윌리엄 섬의 남서 해안에서 발견되었다. 피츠제임스 선장의 마지막 기록은 킹 윌리엄 섬의 빅토리 포인트에서 발견되었다.

1848년 4월 25일자로 작성된 이 기록에 따르면, 존 프랭클린 경은 1847년 6월 11일에 사망했으며, 이 날까지 승무원 중 24명이 사망했다고 적혀 있었다. 또한 백피시 강으로 향할 계획도 쓰여 있었다.

피츠제임스 선장과 최소 12명이 사망한 위치는 1860년대에 확인되었다. 이누이트의 증언에 따르면, 살아남은 대원 중 일부는 극심한 굶주림으로 인해 식인 행위를 저질렀다고 한다. 이 사실은 빅토리아 시대 당시 영국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1990년대에 인류학자 앤 킨리사이드 박사가 회수된 유골의 4분의 1에서 칼에 의한 인위적인 절단 흔적을 발견하면서 식인 행위의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누이트의 증언에 따르면, 뼈 속 골수를 추출하기 위해 뼈를 부수고 삶았다는 생생한 묘사도 있었다.

 

자손의 DNA 샘플 채취로 피츠제임스 선장을 확인

 

DNA 분석은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졌다. 워털루 대학교의 인류학 교수인 더글러스 스탠튼 박사와 그의 팀은 2017년에 지금까지 회수된 8개의 아래턱뼈를 포함한 유골 분석 허가를 받았으며, 생존하는 당시 승무원들의 자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로부터 DNA 샘플을 수집했다.

약 25명의 자손의 유전적 관계를 확인한 결과, 칼에 의한 상처가 있는 아래턱뼈의 어금니가 피츠제임스 선장의 자손 중 한 명과 일치하여 그의 신원이 확실하게 확인되었으며, 동시에 식인 행위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극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

 

승무원들은 괴혈병, 저체온증, 극도의 굶주림에 의한 식인 행위 등 복합적인 이유로 사망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로, 탐험대가 마지막 순간까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를 더욱 생생하게 보여주며, 그들이 직면한 극한 상황 속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더글러스 스탠튼 박사는 “발견된 증거를 통해 원정대의 비극적인 결말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다”고 말하며, “이누이트의 증언은 난파선의 위치를 알아내는 데 매우 중요했지만, 그 일부는 뒷받침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증언은 프랭클린 원정대의 비극적 항해의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 연구는 2024년 9월 24일에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Reports”에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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