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내가 먼저 돌아가지 않았다면… 나를 지켜준 소꿉친구

※이 글은 실제 이야기를 참고해 재구성한 글이다.

나는 예전부터, 뭐든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무표정한 성격이었다.

친구도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었다.

연애는, 태어나서 딱 두 번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무표정하고 무관심한 태도로는 잘 살아가기 힘들다

억지로 웃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왕따를 당하게 되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나는 줄곧 주변에서 떠도는 존재였다.

 

그런 나에게도, 중학교 1학년 때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좋아해서 사귄 건 아니었다.

그냥 고백을 받았으니까 사귀어봤던, 그 정도의 애매한 관계였다.

 

고등학교는 나를 괴롭혔던 아이들이 없는 조금 먼 학교로 진학했다.

조용히 다니기 시작한 평범한 하루하루.

그런데, 소문이라는 건 참 이상할 정도로 멀리 퍼진다. 예전에 있었던 일이 어느새 퍼져 있었고,

또다시, 그 “악몽” 같던 왕따가 나를 덮쳐왔다.

 

그런데, 어느 날을 경계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반년쯤 지나자 주위에서 다시 따뜻한 웃음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평온을 되찾은 그 날들이 고마웠고, 안도했다.

 

그로부터 사흘쯤 지나고 나서였다.

옆집에 살고 있고,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소꿉친구가 학교 계단에서 떨어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연락을 엄마에게서 들었다.

병원으로 달려가 보니, 그는 천장에서 매달린 기구에 다리를 고정하고 있었고, 얼굴에는 맞은 듯한 멍 자국이 떠올라 있었다.

몸이 약한 그에게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웃으며 말했다.

“또 어지러워서,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어~”

 

그는 일주일 정도 입원한 뒤, 평소처럼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 무렵,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그 아이가 몸이 약해서 위험하니까, 매일 같이 등교해 줬으면 좋겠어.”

나는 잠시 고민했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사귀는 남자친구와 매일 아침 역까지 함께 가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귀찮다고 느끼면서도, 소꿉친구에게 그 얘기를 하러 갔다.

그러자 그는 조금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남자친구랑 가. 괜찮아.”

그렇게 말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남자친구에게 차였다.

“너 말고도 만나는 애 있어. 쿨할 줄 알았더니 그냥 무뚝뚝하기만 하네. 재미없어서 헤어지자.”

그렇게 말해졌다.

나는 좋아하지도 않았던 사람인데도, “그래”라고 대답한 순간부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왕따 당할 때보다 더 괴로웠다.

 

그때 말을 걸어준 사람이, 바로 그 소꿉친구였다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을게. 절대 놓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나랑 사귀자. 계속 좋아했어.”

나는 마음이 부서진 상태였지만, 그 말에 구원받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전의 남자친구보다 훨씬 더 나를 소중히 대해주었다.

하지만 그 다정함이, 때때로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헤어질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같이 등교하던 길이었다.

신발장 앞에서, 그가 무언가 적힌 종이를 손에 들고, 깊은 한숨을 쉬고 있는 걸 보았다.

나는 그냥 궁금해서, 그가 보지 않는 사이 슬쩍 종이를 빼내 버렸다.

거기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죽어
현주(익명)랑 사귄다며? 역겨워
또 떨어지고 싶은 거야?

 

나는 말문이 막혔다.

“이거, 뭐야?”라고 따져 묻자, 그는 조용히 웃었다.

“니가 위험해 보여서 그랬어.”

“계속 좋아했었다고 했잖아.”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나는 몸이 약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근데 지금은 지킬 수 있을 것 같았어.”

“니가 괴롭힘당하는 거, 그냥 지켜보는 거 너무 싫었어.”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언제나 곁에 있어 줬던, 소중한 사람의 존재를.

가장 다정하면서도, 가장 강했던 그 사람을.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그는 그런 나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어주었다.

 

이제야 그를 소중히 하자고 마음먹은 바로 그때였다.

방과 후, 그가 나에게 말했다.

“할 일이 있어서, 오늘은 먼저 가줄래?”

나는 아무 의심 없이, 순순히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내가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렇게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집에서 멍하니 있던 중, 엄마가 새파란 얼굴로 방에 뛰어 들어왔다.

“문주(익명)가 얼음물 뒤집어쓰고 쓰러졌대!”

그는 심장이 약해서, 달리는 것조차 의사가 말렸던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나와 함께 등교해주고 있었던 거였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는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죽은 거야?”

그러자 그가 천천히 눈을 뜨고 웃었다.

“마음대로 죽이지 마.”

 

그는 살아났다.

하지만

그 무리한 행동 때문에, 심장병이 악화되었다.

학교를 자퇴했고,

장기 입원 생활에 들어갔다.

 

그때 처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그는

“현주(익명)는 사실 정말 착한 아이야. 잘 좀 봐줘.”

그렇게, 나를 위해 반 친구 한 명 한 명에게 고개를 숙이고 다녔던 것이다.

그래서, 내게 가해지던 괴롭힘이 멈췄던 것이었다.

 

나는 바보였다.

그를 “귀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아침, 점심시간, 방과 후마다 병원에 들렀다.

그는 나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었다.

“정말 소중한 건, 그 순간엔 잘 모를 수 있어.”

“하지만 나중에라도 깨달았다면 괜찮아. 진심을 담아, 천천히 채워가면 돼.”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지금은, 그 사람을 꼭 닮은 웃음을 가진 작은 여자아이와 함께,

우리 셋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딸이 살짝 열이 났던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 닮아서 그런 거 아닐까?”

우리 둘은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 시절에는 상상도 못 했던, 따뜻하고 평온한 시간 속에서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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