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이야기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소개된 체험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 공유합니다.
다섯 해 전, 겨울 아침이었다.
출동 지령이 무전으로 울려 퍼졌고, 우리 구조대는 병원 화재 현장으로 달려갔다.
매서운 건조한 바람이 감돌던 그날, 도착했을 때는 이미 2층 창문 너머로 노란 불꽃이 솟구치고 있었다.
1층은 동료들에게 맡기고, 나는 선배와 함께 계단을 뛰어올랐다.
2층 복도는 자욱한 검붉은 연기로 가득 차 있었고, 시야는 고작 5미터 남짓.
“서쪽은 네가 맡아!”
열기로 흐릿하게 떨리는 선배의 뒷모습을 뒤로하고, 나는 동쪽 병동 쪽으로 몸을 던지듯 향했다.
점검등 하나만이 희미하게 앞을 비췄고, 나는 병실 문마다 문을 열며 안을 살폈다.
마지막 문.
그곳엔 흰색 침대에 한 여성이 쓰러져 있었다.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었고, 나는 맥박과 호흡을 확인한 뒤 그녀를 안아 들었다.
등을 타고 느껴지는 체온,
무방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타들어간 냄새.
“살아 있어줘…”
그 마음 하나로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며칠 후.
그녀가 계속 마음에 걸렸던 나는 근무를 마치자마자 꽃과 과일 바구니를 들고 병실을 찾았다.
침대 위에서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그녀는, 놀라울 만큼 고운 사람이었다.
“몸은 좀 어떠세요…”
말을 걸자 그녀는 살짝 고개를 갸웃하다가, 간호사가 건넨 메모패드에 조용히 글씨를 써내려갔다.
‘고맙습니다. 이젠 괜찮아요.’
깜빡이는 눈 너머로 작게 웃는 그녀의 표정.
그녀가 청각장애인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기했다.
말이 오가지 않는 필담인데도, 종이 위의 글자가 튀듯이 생기 넘쳤고
마음이 고스란히 닿아오는 느낌이었다.
책을 좋아한다는 것, 단 건 잘 못 먹지만 밀크티는 좋아한다는 것…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작별 인사를 하려는 순간, 그녀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글을 써 내려갔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또 와주실 수 있나요?’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고, 의료용 마스크 안에서는 이미 웃고 있었다.
그날 이후 두 달 동안.
비번일마다 병원에 들렀다.
나는 손말을 배웠고, 그녀는 내가 가져간 밀크티의 브랜드를 바로 알아봤다.
현장 속의 불꽃보다 그녀의 미소가 훨씬 더 뜨겁게 가슴을 달궜다.
어느 맑은 오후.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 한 줄을 쓴 종이를 건네기까지, 손이 떨려 문조차 열지 못했다.
창문을 타고 들어온 겨울 햇살이 흰 침대 시트를 녹이고 있었고,
책 속에 파묻혀 있던 그녀는 금빛으로 감싸져 있었다.
말로 할 수 없던 나는 서툰 손말로 가슴을 가리키고, 그녀를 가리키고, 다시 내 가슴을 두드렸다.
그녀는 빠르게 눈을 깜빡이며 메모장에 천천히 연필을 댔다.
‘나… 귀 안 들려요? 같이 있으면… 힘들지도 몰라요?’
글씨가 흐트러져 있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짧게 답했다.
‘당신의 고요함까지 안아줄게요. 내 곁에 있어줘요, 계속.’
눈물로 번지는 글자를 앞에 두고도,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크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연애가 시작되자 그녀는 의외의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번개가 치면 어린 짐승처럼 내 품속으로 숨었고,
가지 반찬이 나오면 아이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어깨를 토닥이면 간질거리듯 움츠러들고는, 손말로 ‘한 번만 더’ 하고 조르기도 했다.
구급 구조 강의보다 먼저, 나는 그녀의 안심 신호를 익혀갔다.
사귄 지 2년째.
노시로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른 아침,
나는 반지도 말도 없이 무릎을 꿇고 손바닥 위로 손말을 띄웠다.
【결혼해 주세요】
한겨울 바닷바람에 뺨을 물들인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쥐었다.
손끝은 얼었지만, 심장은 한여름처럼 뛰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결혼 3년 차.
출동 벨이 울리는 아침,
현관 앞에서 손말과 웃음으로 나를 배웅해주는 아내가 있다.
‘돌아오면 꼭 포옹 요금 더 내셔야 해요’
그 농담을 들으며 방화복의 지퍼를 올린다.
죽음과 마주하는 현장에서도
그 조용한 격려가 내 안에서 꺼지지 않는 불이 되어 남아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두려움 없이 불을 향해 뛴다.
곧 비번이 끝난다.
오늘 밤도 두 팔 가득 안고, 손바닥으로 ‘사랑해’라고 전하러 집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