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사람은 더 이상 연락 안 하니까 주소록에서 지워야지.” 여러분도 이렇게 아무 설명도 없이, 갑자기 인간관계를 끊거나 혹은 상대에게서 끊긴 경험 한 번쯤은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갑자기 연락 끊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처럼 일방적으로 갑자기 연락을 끊고 소식이 완전히 끊겨버리는 행위를 ‘고스팅(Ghosting)’이라고 부른다.
보통 고스팅은 하는 쪽이든 당하는 쪽이든 “상대방 마음은 아예 고려하지 않은, 자기중심적이고 무례한 행동”으로 생각하기 쉽다. 아니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고스팅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오히려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동기가 작동하고 있었을 수 있다. 다만 고스팅을 당하는 쪽은 이런 속사정을 알 수 없으니, 언제나 부정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갑자기 연락 끊는 이유에 대한 연구 결과는 미국 뉴욕대학교 스턴 경영대학원에서 2024년 심리학 학술지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에 게재하였다.
갑자기 연락 끊는 이유는 어떤 동기가 있을까?
고스팅은 친구 사이, 연인 관계, 직장 내 인간관계 등 여러 장면에서 두루 발생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내가 했거나, 혹은 당했거나” 경험이 있을 법하다.
연구를 이끈 박예진(Park Yejin)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개인적으로도, 직장 관계에서도 고스팅을 해본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이 현상에 늘 관심이 많았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앞서 말했듯,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는 것이니 “상대 감정은 무시하고,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것”으로 생각되기 마련이다.
실제로 단순히 귀찮거나, 더 이상 필요 없어서 연락처를 지워버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팀은 한발 더 나아가 “고스팅을 하는 사람도 사실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해 보았다.
연락을 끊는 사람도 마음이 아픈 경우가 많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팀은 일련의 심리 실험을 진행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에게 고스팅 경험을 떠올리게 한 뒤, 고스팅을 했을 때와 당했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조사했다.
참가자는 싱가포르의 일반인 201명으로, 고스팅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들이다.
그 결과, 이유는 다양했다.
예를 들어 “너무 바빠서 연락을 이어갈 수 없었다” 같은 불가피한 이유도 있었고, “취미를 계기로 친해졌지만 막상 대화가 잘 안 통해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같은 부정적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든 공통적으로, 연락을 끊은 쪽은 상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동시에 상대의 심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반면 고스팅을 당한 쪽은 이런 속사정을 전혀 알 수 없으니, 거의 항상 “상대를 배려하지 않은 무례한 행동”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음 실험에서는 앞선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고스팅이 불가피한 상황을 설정한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그 시나리오에 따라 참가자들이 실제 채팅을 하다가 중간에 연락을 끊게 했다.
참가자는 영국 거주자 118명으로, 무작위로 두 명씩 짝을 지어 온라인 채팅을 진행했다.
이때 “고스팅 역할”로 배정된 쪽은 대화 도중 아무 말 없이 연락을 끊게 했다.
이유는 시나리오에 따라 “바빠서 더 이상 연락을 이어갈 수 없었다”, “대화가 잘 안 맞아 불편하다” 등이었다.
그 결과, 연락을 끊긴 쪽은 사정을 모른 채 답을 기다리며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당했다”는 기분을 강하게 느꼈다.
그러나 고스팅한 쪽은 늘 “갑자기 연락을 끊어 미안하다, 상대가 상처받지 않았을까” 하고 신경을 쓰고 있었다.
마지막 실험에서는, 사람들이 고스팅을 피하기 위해 얼마나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 확인했다.
참가자는 동일하게 영국 거주자 118명.
역할은 고스팅을 하는 쪽과 당하는 쪽으로 나뉘었고, 고스팅하는 사람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냥 아무 말 없이 연락을 끊는다.
대신 소액의 돈을 내고, “연락을 중단하겠다”는 메시지를 상대에게 전한다.
놀랍게도 다수의 참가자가 돈을 내고서라도 메시지를 전하는 선택을 했다.
박예진 박사는 “이 결과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사람들이 고스팅을 피하기 위해 기꺼이 자기 돈을 지불하는 걸 보면서, 고스팅이 결코 악의에서 비롯된 행동은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라고 말했다.
고스팅은 악의가 아니다, 그러나…
이상의 실험들을 종합하면, 고스팅을 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악의적인 마음을 품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상대를 걱정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정작 고스팅을 당한 사람들은 그 심리적 동기를 알 길이 없으니, 언제나 “갑작스러운 단절”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리하면, 연락이 끊기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연락을 차단하는 쪽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 마음이 전달되지 않으니 결국 불쾌한 행동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지식을 널리 알리는 것이 “고스팅을 당했을 때의 심리적 고통을 덜어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지인에게 갑자기 연락이 끊기면, 대부분 갑자기 연락 끊은 이유에 대해 “내가 싫어졌나?”, “뭐야, 무례하네” 하고 생각하겠지만, 연락을 끊은 사람에게는 악의가 전혀 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굳이 연락처를 지우기 전에, 갑자기 연락 끊는 이유에 관해 괜한 말 한마디 덧붙여 상처를 주느니, 침묵하는 게 최선이다”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스팅을 당한 사람도 조금은 마음을 가볍게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