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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단어 이해한 보노보 칸지, 44세로 별세

2025년 3월 18일 오후,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에 위치한 유인원 보호 및 연구센터 ‘에이프 이니셔티브에서 오랫동안 사람과 소통하며 많은 사랑을 받아온 보노보, ‘칸지(Kanzi)’가 44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소식을 전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이별

‘칸지’가 세상을 떠난 그 날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밥을 맛있게 먹고 나서, 오전 내내 조카인 ‘테코’와 뛰어다니며 놀이를 즐겼다. 센터 직원들이 보기에도 칸지는 더없이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칸지’는 또 다른 조카인 ‘뇨타’와 함께 누워 편안히 그루밍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직원들이 서둘러 달려왔을 때는 이미 심장 박동과 호흡이 멈춘 상태였다.

센터에서는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밝힐 예정이지만, ‘칸지’는 예전부터 심장 질환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심전도와 혈압 체크를 받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날 그의 죽음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인간과 소통을 시작한 특별한 보노보의 탄생

 

 

‘칸지’는 1980년 10월 28일, 미국 조지아 주립대학 언어연구센터(LRC)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수 새비지 ‘란보'(Sue Savage-Rumbaugh) 박사의 따뜻한 보살핌 아래 성장했다. ‘칸지’와 ‘란보’ 박사의 첫 만남은 1981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란보’ 박사는 유인원과의 소통 가능성을 실험하던 중이었다. 그녀는 ‘칸지’의 양어머니인 마타타(Matata)에게 ‘렉시그램’이라 불리는 그림 기호 언어를 가르치려 했다. 하지만 정작 실험 대상이었던 ‘마타타’는 기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실험은 실패로 끝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실험에는 참여하지 않던 어린 ‘칸지’가 박사 앞에서 갑자기 기호 두 개를 눌렀다. “사과”와 “추적”이었다. 그리고 그는 바닥에 떨어진 사과를 주워 들었다. 박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문전의 어린 아이도 경전을 외운다’는 말처럼, ‘칸지’는 그저 옆에서 지켜보며 기호 언어를 스스로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120회가 넘는 의사소통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언어를 ‘즐긴’ 유인원

 

 

이후 ‘칸지’는 ACCI로 자리를 옮긴 ‘람보’ 박사와 함께 생활하며, 단어를 결합해 스스로 문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있는 단어 수는 약 3,000개에 이르렀고, 무엇보다 주입식 학습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싶어서’ 익혔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그의 표현 도구였던 렉시그램은 이후 ‘야키시(Yerkish)’라는 인공 언어로 발전했으며, 인간 외 영장류와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정착했다. ‘칸지’는 언어뿐 아니라 게임과 놀이에서도 놀라운 이해력을 보였다. 실험자의 표정이나 시선을 읽는 대신, 목소리만 듣고도 정확히 지시를 수행했고, 팩맨 같은 게임의 룰도 스스로 익혔다.

불을 피워 마시멜로를 굽고, 다 굽고 난 뒤 물을 뿌려 불을 끄는 영상은, 그가 ‘행동’까지도 이해하고 있었다는 또 다른 증거였다.


‘언어’냐, ‘조련’이냐

그러나 칸지의 특별한 능력과 행동을 두고 논란과 비판도 존재했다. “그저 조련된 행동일 뿐”이라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칸지’의 언어 사용은 결국 인간, 특히 ‘란보’ 박사의 주관적인 해석에 크게 의존했고, 문법적인 요소나 복잡한 문장 구조까지 이해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언어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많은 학자들은 ‘칸지’가 보여준 행동이 흥미롭고 놀랍지만,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언어 능력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란보 박사는 늘 “언어 능력이 반드시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다”고 주장하며 끝까지 칸지를 옹호했다.


이제는 가족처럼 남은 이들 곁에서

 

‘칸지’와 보노보들을 가족처럼 대했던 ‘란보’ 박사는 2012년, “보노보를 학대했다”는 이유로 논란에 휘말려 결국 연구소를 떠나야 했다. 이후 연구소의 방침은 “보노보는 보노보다워야 한다”며 인간과의 지나친 교류를 지양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현재 연구소에는 ‘칸지’의 조카인 테코와 뇨타를 포함한 여섯 마리의 보노보들이 생활하고 있다. 또한 연구소는 칸지의 생애와 그의 업적을 다룬 다큐멘터리 제작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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