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어느 가을날, 미국 워싱턴 대학교 캠퍼스에서는 묘한 장면이 펼쳐졌다. 한 교수가 얼굴 전체를 뒤덮는 섬뜩한 가면을 쓴 채 잔뜩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었고, 주변에서는 수십 마리의 까마귀들이 격렬하게 울어대고 있었다. 마주친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교수님은 왜 저런 가면을?” “까마귀들은 왜 저렇게 난리일까?” 궁금증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이야기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존 마저루프(John Marzluff) 교수와 동료들은 한 실험을 위해, 무서운 가면을 쓰고 까마귀 7마리를 잠시 포획한 일이 있었다. 해를 끼친 건 아니었지만, 다리에 표식을 달고 바로 놓아주었을 뿐인데도, 그 뒤로 까마귀들의 반응은 심상치 않았다.
까마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영리하고, 기억력과 사회성이 탁월한 새다. 한 번 위험한 얼굴이라 판단하면 오래도록 잊지 않는다. 게다가 그 정보가 무리 전체로 공유되기까지 한다. 한 마리가 어느 인간을 ‘적’으로 찍으면, 그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가 무리 전체가 그 인간을 경계하게 된다.
교수진이 한 ‘실수’는 바로 무서운 가면을 쓴 사람이 자신들을 잡았다는 인식을 까마귀들에게 심어준 것이었다. 이후 가끔씩 그들은 동일한 공포 가면을 쓰고 캠퍼스를 돌며 까마귀에게 먹이를 주었지만, 까마귀들은 가면만 보면 “카아! 카아!” 소리를 내며 공격적으로 반응했다. 포획한 건 7마리에 불과했지만, 어느새 캠퍼스 안에서는 53마리 중 47마리가 가면 쓴 사람을 싫어하게 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원한이 가볍게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6년에 시작된 이 원한은 2013년을 정점으로 조금씩 풀렸고, 17년이 흐른 2023년 9월, 마저루프 교수가 다시 공포 가면을 쓰고 캠퍼스를 거닐었을 때는 더 이상 그를 위협하는 까마귀가 한 마리도 없었다.
한편, 이 기억은 단순히 개별 새의 머릿속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까마귀들은 한 마리가 어떤 인간을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그 정보를 재빨리 무리 전체가 공유한다. 나아가 이런 정보는 다음 세대로까지 전해진다. 어린 까마귀들도 직접 겪지 않고도 “저 얼굴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까마귀의 능력은 단지 원한을 품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딱딱한 호두를 도로 위에 떨어뜨려 지나가는 자동차가 껍질을 깨주도록 유도하고, 갈고리처럼 구부린 나뭇가지를 도구 삼아 먹이를 꺼내는 등 놀라운 지혜를 발휘한다. 또 가족 단위로 생활하며 감정도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다.
까마귀들은 울음소리로 서로 소통하며, 지역별 ‘방언’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음성을 구사한다. 이러한 소통 능력을 바탕으로 먹이에 대한 정보나 외부 적에 대응하는 전략 등을 순식간에 교환한다. 이처럼 지식과 경험을 다음 세대에까지 물려줄 수 있는 동물은 인간을 제외하고는 극히 드물다.
생각해보면, 까마귀를 적으로 만드는 건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한 번 미움을 사면 최대 17년이나 그 원한에 시달릴 수 있다. 게다가 그 정보는 다른 까마귀와 다음 세대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결국 까마귀 앞에서는 불필요한 적대 행위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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