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 목격
가끔씩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UFO 목격’ 보도, 한번쯤은 본 적 있지 않은가. 심지어 대중매체가 이를 크게 다루고, 연구자들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인류가 하늘을 올려다본 역사는 무려 수천 년에 이른다. 하늘에서 무언가 불가사의한 걸 봤다고 기록된 사례 역시, 알고 보면 아주 옛날부터 있었다. 그렇다면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UFO 목격담은 대체 언제였을까? 그리고 요즘처럼 20세기 중반 이후 목격담이 잦아지기 전에도 이미 UFO 이야기가 전해졌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적어도 전근대 시절의 사례를 보면 “이게 명백히 첫 UFO 기록이다!” 하고 콕 집어 말하기가 꽤 어렵다고 한다.
독립 연구자이자 ‘매고니아 익스체인지(Magonia Exchange)’라는 국제 UFO 역사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크리스 오벡(Chris Aubeck)은, 라이브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기록된 UFO 목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이게 단지 자료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실은 고대 유물이나 문헌을 뒤져보면, 하늘에 나타난 수수께끼의 물체가 묘사되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역사와 생명윤리를 가르치는 그레그 에기기안(Greg Eghigian) 교수는 “우리가 알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미 고대부터 사람들은 하늘에서 이상한 현상을 봤다고 묘사하거나 기록을 남겨왔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렇게 오래된 기록들은 대부분 맥락이 모호하다는 데 있다. 즉, 이것들을 두고 “이게 진짜 UFO 목격담이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오벡이 언급한 사례 중 하나로, 수메르나 바빌로니아의 점토판 문헌이 있다. ‘쑤마 알루(Šumma ālu)’라는 점복 텍스트를 비롯해 기원전 2~1천 년대 문서들을 보면, 하늘에 나타난 기묘한 형상이나 검은 운석 같은 것을 언급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대개 흉조 같은 종교적 징후로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로 치면 ‘정체 불명의 비행물체’를 봤다고 기록한 것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건 그들의 신앙이나 주술적 믿음과 맞물린 것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해당 텍스트들에는 시각 자료가 전혀 없어서, 정확히 무엇을 봤는지 재구성하기조차 쉽지 않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에기기안 교수는 “이런 기록들은 본래 작성된 문화적 맥락이 많이 사라져 있다 보니, 곧이곧대로 ‘외계인의 방문 목격’이라고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한다. 혹은 혜성, 흔치 않은 구름, 운석 등에 대한 당대 사람들의 종교적·신화적 해석일 수도 있기에, 실제로 그들이 말한 ‘형상’과 오늘날 말하는 ‘UFO’가 일치한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비교적 나중 시대인 16세기 유럽에서도 묘한 사건이 전해진다. 1561년 4월 14일, 독일 뉘른베르크 시민들은 하늘에서 무언가가 서로 싸우고 추락하는 듯한 광경을 보았다고 보고했다. 십자가 모양, 원통형, 심지어 검은 화살 모양 물체들이 공중전을 벌였다는 것이다. 지역 예술가 한스 글라서(Hans Glaser)는 이를 나무판화로 남겼는데, 거기엔 “이 물체들이 해가 뜨는 쪽에서 맞부딪치더니, 태양에서 지면으로 떨어져 거대한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이런 징후가 뜻하는 바는 신만이 알 것”이라며 결론을 내지 않았고, UFO나 외계 생명체에 대해 언급하지도 않았다. 당대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신의 계시’나 ‘특별한 징조’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인간이 오래전부터 외계 문명의 존재 가능성을 생각해온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하늘에서 날아온 그것이 외계인이며, 직접 우리를 방문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흔치 않았다.
그래서 1947년 이전에 기록된 옛 문헌을 보면, 뭔가 이상한 게 하늘에 떠 있었다는 보고는 있으나, 그것을 곧장 “우리보다 앞선 우주인의 비행접시”라고 연결 짓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에기기안 교수에 따르면, UFO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외계인 혹은 미확인 비행물체’ 개념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1947년 케네스 아널드(Kenneth Arnold)의 목격담이다. 당시 아널드는 워싱턴주 레이니어산(Mount Rainier) 인근에서 추락한 화물기를 찾아 비행 중이었다. 그런데 높은 속도로 일렬로 날아가는 아홉 개의 물체를 목격했다. 그가 이 사실을 지역 신문에 알리자, 기자가 “그 물체는 어떻게 움직였나요?”라고 물었다. 아널드는 “접시를 물 위에 던져 물수제비를 뜨게 하는 것처럼 튀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접시처럼 날았다”는 말이 기자에 의해 “플라잉 소서(flying saucer)”라는 표현으로 보도됐고, 그해 여름부터 각종 매체에서 “비행 접시” 이야기가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때를 기점으로, 이른바 ‘현대 UFO 문화’가 본격적으로 불붙었다는 평가다. 연구자 오벡 역시 “이 사건을 통해 UFO가 대중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고 동의한다.
흥미로운 건, 그 당시 일반인들이 이 비행 물체를 처음부터 ‘외계인’이라고 단정 짓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미국 군대가 비밀리에 개발 중인 첨단 항공기”라든가, “소련의 비밀 병기”라는 식으로 의심하는 경향이 더 강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냉전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1912년과 1914년에 잉글랜드 일대에서 비행선을 목격했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도, 사람들은 “독일 스파이 비행선이 틀림없다!”고 걱정했다고 한다. 즉, 하늘에서 나타난 정체 모를 비행물체를 보며, ‘다른 나라가 슬슬 우리를 치러 오는 건 아닐까?’ 하는 식의 공포가 먼저 솟아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UFO 목격담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외계인 존재의 증거가 있다, 없다”를 넘어선다. 오벡은 “UFO 이야기를 파고들면,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일종의 ‘도시전설’을 보는 셈”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종종 자기 눈으로 본 것을 스토리화하고, 여기에 상상력을 덧붙인다. 그 과정에서 집단적 공포나 소망, 문화적 배경이 개입하면서, 목격담은 때로는 종교적·정치적 해석으로도 확장된다.
이런 현상을 연구하는 이유는,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을 대할 때 어떤 방식을 택하는지 파악하기 위함이다. 혜성이나 운석, 또는 아직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자연현상일 수도 있고, 정말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무언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사람들은 ‘이해되지 않는 현상’을 해석하고, 때로는 거기에 영적·종교적·정치적 의미까지 덧씌운다는 것이다.
결국 UFO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인간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식을 이해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정체를 알 수 없지만 굉장히 신비로운 현상” 앞에서, 사람들은 두려움, 호기심, 믿음, 의심 등 온갖 감정을 겪는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이 곧, 우리의 문화와 서사를 형성하는 큰 재료가 된다.
“최초의 UFO 목격”을 딱 하나로 특정하기는 어렵다. 특히 1947년 이전의 기록들을 보면, 하늘에서 뭔가 이상한 게 보였다는 이야기들은 정말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지만, 그것을 지금식으로 “저건 외계인이야”라고 해석하진 않았던 듯하다.
오히려 UFO라는 아이디어가 대중에게 널리 퍼진 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냉전 분위기가 피어오르던 때와 무관하지 않다. 당시엔 외계인보다는 “저건 우리 몰래 개발한 군용기가 아닐까?” 하는 식의 의심과 공포가 더 컸다는 점이 흥미롭다.
어쨌든 우리가 UFO 목격담을 단순히 “외계인 얘기”로 치부하기보다는, 인간이 가진 호기심과 상상력,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문화적·정치적 맥락까지 함께 살펴보면 훨씬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상한 것을 본다”는 행위가 얼마나 우리 인간 사회와 ‘이야기의 힘’을 잘 보여주는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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