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보마르초
이탈리아 움브리아주 보마르초라는 조용한 마을 한켠에, 좀처럼 보기 힘든 특별한 정원이 숨어 있다. 이곳의 이름은 바로 ‘사크로보스코(Sacro Bosco)’. 이탈리아어로 ‘성스러운 숲’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발걸음을 옮겨보면 이름 그대로 묘하게 신비로운 기운이 감돈다.
정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이곳이 평범한 정원이 아니라는 걸 단번에 느낄 수 있다. 흉측하리만큼 거대한 몬스터 석상들이 사방에 버티고 서 있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집 같은 기묘한 건물도 눈에 띈다. “저렇게 기울어져 있어도 괜찮은 걸까?” 싶은 불안감에 슬쩍 뒤로 물러서게 될 정도다. 마치 다른 차원에 발을 들인 듯한 기분이 들어, 처음 온 사람은 누구라도 약간 겁이 나거나 당황스러워질 수도 있다.
정원 앞에는 스핑크스 석상과 함께 이런 문구가 적힌 비문이 있다고 한다. “눈썹을 치켜올리고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이 땅을 걷지 않는다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가장 으뜸가는 이곳을 제대로 즐길 수 없을 것이다.” 무슨 뜻인지 한 번에 이해하긴 어려워도, 적어도 평소와는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경고처럼 들린다. “이곳에서 벌어질 일들을 쉽게 넘기지 말라”는 말인 셈이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16세기 중반에 피에르 프란체스코 오르시니 공작이 이 정원을 조성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당시 르네상스의 대표적 건축가 중 한 명인 피로 리고리오가 이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그의 이력만 봐도 범상치 않은 건축물들이 탄생했을 법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이토록 독특한 정원이 무려 400년 가까이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는 점이다. 현대로 넘어와서, 1954년에 이탈리아인 조반니 베티니가 이곳을 매입해 복원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방치되어 왔다고 한다. 수백 년 동안 잊혀져 있었으니, 처음 이 정원을 다시 발견했을 때의 충격은 말로 다 못할 것이다.
“오르시니 공작이 사랑하던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며 만들었다”, “고전 문학에 나오는 우화를 석상으로 형상화하고 싶었다”, “공작 본인이 괴물 같은 내면을 품고 있어서 그렇다” 등 온갖 추측이 나돌 뿐이다. 실제로 1962년에 아르헨티나 작가 마누엘 무히카 라이네스가 쓴 소설 “보마르치”에서는, 오르시니가 아내의 불륜에 복수하려는 광인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비록 소설이지만 왠지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어서, 이 정원에 대한 미스터리를 한층 부풀렸다.
오르시니가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것은 여러 정황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인맥도 넓고 재력도 상당했던 인물이지만, 정원 곳곳에 존재하는 괴물 조각들은 대부분 그가 아내 줄리아를 잃은 뒤 만들어졌다고 하니, 애절함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괴상망측한 석상들이 전부는 아니다. 예를 들어 ‘지옥의 입’이라 불리는 거대 조각상을 보자. 모든 것을 삼키는 어둠의 존재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기발한 엔터테인먼트 공간이었다고 한다. 입 부분이 문, 눈이 창문, 혀가 식탁, 이빨이 의자처럼 쓰였고, 실제로 그 안에서 연회가 열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어둠과 유희가 뒤섞여 있는 셈이다.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 또한 예사롭지 않다. 어두운 나무들과 신비로운 바위들이 어우러져, 금방이라도 전설 속 유령들이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로마 시대 이전인 기원전 1000년대부터 이 지역에 살았던 에트루리아인들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미스터리가 된다. 이렇듯 과거가 공백으로 남아 있는 공간에서는 상상력이 마음껏 펼쳐질 수밖에 없다.
1580년에 오르시니가 세상을 떠난 후, 이 괴물 정원도 점차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살바도르 달리나 장 콕토 같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찾으면서 다시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살아난 정원은, “여전히 무엇 하나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한 공간”이라는 평가와 함께 서서히 명성을 되찾았다.
지금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는다. 정원에 가득 들어찬 석상들과 뒤틀린 건축물에서 풍기는 기묘한 에너지가,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난해함’을 오히려 매력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사크로보스코 정원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정원을 설계한 이들, 그리고 기묘한 비문과 조각상을 남긴 이들이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알 수 없음 자체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오르시니가 새겨놓았다는 문구 중에는 “자신 이외에는 닮은 것이 없으며, 그 무엇과도 닮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다소 추상적이지만, 사크로보스코를 직접 마주해본다면 뭔가 ‘이곳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가 흔히 느끼는 개인의 슬픔이나 불가사의함이 이 정원에서는 석상과 비문이라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난 것일지도. 그래서 더더욱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가슴 한편을 묵직하게 울린다. 괴기스러우면서도 묘하게 빠져드는 보마르초의 ‘괴물 정원’. 언젠가 직접 가볼 기회가 생긴다면, “나만의 방식으로 이 수수께끼에 도전해보겠다”라는 마음으로 방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분명, 평생 잊지 못할 아주 독특한 기억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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