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와 오세아니아에 서식하는 수컷 귀뚜라미는 배불리 먹이를 먹으면, 같은 수컷에게 구애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 습성이 확인된 것은 ‘남양귀뚜라미(Teleogryllus oceanicus)’이다. 물론 모든 수컷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영양을 충분히 섭취할수록 수컷에게 성적 관심을 보이는 개체가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세인트폴 캠퍼스 연구팀은, 후손을 남길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동성에게 구애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가설을 세웠다.
동물들 사이에서는 의외로 동성애(양성애)가 일반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지만 그 이유는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구애나 교미는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자신의 몸을 위험에 처하게 해야 할 정도로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든 일인데도, 왜 후손을 남길 수 없으면서도 동물 세계에서 동성끼리 구애나 교미를 하는 걸까?
유력한 가설 중 하나는, 데이팅 앱의 조건 필터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데이팅 앱 조건 필터 가설’이라고 부르자. 데이팅 앱을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상대의 조건을 너무 까다롭게 설정해 아무도 만날 수 없었던 경험을 해봤을지도 모른다. 이는 야생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너무 까다롭게 고르면 짝을 찾지 못하고, 자손을 남기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교미 파트너의 조건을 어느 정도 느슨하게 설정하는 것이 자손을 남길 기회를 넓힐 수 있다. 특히 수컷과 암컷의 신체적 특징이 크게 다르지 않은 종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동물의 동성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세인트폴 캠퍼스 연구팀은 남양귀뚜라미 수컷에게 고급 식사와 저급 식사 중 하나의 먹이를 제공하고, 암컷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했다. 남양귀뚜라미는 외형상 수컷과 암컷을 구별하기 어렵지만, 수컷의 암컷에 대한 관심은 울음소리를 통해 알 수 있다. 암컷을 유혹할 때는 특징적인 단거리 노래를 부른다. 반면 매력적인 상대가 주변에 없을 때는 장거리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이 실험 결과, 배부르게 먹은 수컷은 수컷에게도 구애의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영양이 부족한 수컷은 그런 경우가 훨씬 적었다. 이것은 데이팅 앱 조건 필터 가설의 옳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관성 있는 결과이다. 즉, 충분히 먹고 여유가 있을 때는 어느 정도의 낭비도 괜찮다. 그래서 수컷은 교미 기회를 최대화하기 위해 파트너 조건을 느슨하게 설정하고, 그 결과 동성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영양이 부족할 때는 매칭 필터를 엄격하게 설정해 자손을 남길 수 있는 상대만 찾는다. 데이팅 앱 조건 필터 가설의 장점은, 동성애를 어떤 실수나 특별한 사례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유연한 대응으로 설명할 수 있다. 파트너를 너무 고르다가 자손을 남길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는, 스트라이크존을 넓혀 교미 기회를 늘리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동물의 동성애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암컷과 교미한 직후의 수컷 귀뚜라미는 수컷에게 구애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한다. 이것은 직관에 반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막 교미를 마친 수컷은 피곤할 것이고, 영양이 부족한 수컷처럼 매칭 조건을 엄격하게 설정할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수컷이 암컷과 교미한 후 수컷에게 구애하는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사례로 데이팅 앱 조건 필터 가설이 증명된 것은 아니며, 인간의 동성애도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연구는 2024년 9월 23일자 PNAS에 게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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