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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젠한 실험, 전대미문의 정신병원 잠입으로 드러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사람들은 과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제대로 구분할 수 있을까?” 1970년대 미국에서, 바로 이 궁금증을 직접 실험으로 옮긴 인물이 있었다. 그 이름은 데이비드 로젠한(1929~2012). 심리학자이자 스탠퍼드대학교 명예교수로, 그는 정신병원에 정신질환을 가장한 ‘위장 수사관’(실험 참가자)들을 잠입시켜, 그 진단이 얼마나 정확한지 확인해보았다.

이 실험은 그의 이름을 따서 ‘로젠한 실험’이라 불린다.

 

로젠한 실험은 왜 시작되었을까?

 

현대 사회에서도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정신감정을 통해 책임 능력이 없다고 판정받으면, “정말 정신질환이 맞는 건가? 혹시 연기하는 건 아닐까?”라고 의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로젠한 또한 바로 이 지점에 주목했다.

1970년대 초, 미국 전역에서는 정신병 환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정신병원 수도 급격히 증가했다. 문제는 진단 자체가 꽤나 애매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암이나 당뇨 같은 신체 질환은 혈액 검사나 영상 장비를 이용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정신질환은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나 ‘의사의 면담’에 크게 의존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진단 매뉴얼이 세분화되지도 않았다. 의사가 경험이 많고 통찰력이 뛰어나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편견이 들어가거나 주관적인 추측으로 진단을 내릴 위험도 있었다. 그래서 로젠한은 과감한 결론을 내렸다. “그래, 그럼 실제로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이 ‘정신병 환자’인 척하면, 정신과 의사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정신병을 가장한 사람들을 정신병원에 잠입시키다

 

로젠한은 총 8명의 실험 참가자를 모집했다. 남성 5명, 여성 3명이었는데, 대학원생, 심리학자, 화가, 주부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었다. 심지어 그 8명 중 한 명은 로젠한 자신이었다. 이들은 완전히 건강한 일반 성인이었지만, “정신병을 앓는 척”하며 미국 곳곳의 정신병원에 잠입한다.

구체적으로는 “환청이 들린다”고 말하도록 연습시켰다. 상담을 할 때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요”라든지 “공허하다는 목소리가 속삭여요” 같은 식으로 증상을 호소하라고 했고, 나머지는 모두 솔직하게 이야기하라고 지시했다. 예컨대 “직업이 뭐냐”는 질문엔 가짜 직업을 대답하지만, 그 외 가족관계나 과거 이력 등은 실제대로 밝히도록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무려 8명 전원이 “정신장애 의심” 판정을 받고 입원 허가를 받았다. 의사들이 내린 진단명은 대부분 ‘조현병(과거 명칭: 정신분열증)’이었고, 1명만 ‘조울증(양극성장애)’이었다. 누가 봐도 심각한 정신병이라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당연히 이들은 처음에 말했던 “환청이 들려요” 외에는 어떤 증상도 없었지만, 의사들은 멀쩡한 상태조차 “망상의 일종”이라며 의심했다.

실제 입원 생활도 놀라운 에피소드로 가득했다. 가짜 환자들은 곧바로 “아까는 환청이 들린다고 했지만, 이제 그런 증상이 전혀 안 나타나요”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의사들은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정신질환 증세”라며 약 복용을 지시했다. 그래서 로젠한은 미리 “약은 삼키는 척하고 화장실에 버리라”고 안내해 두었다. 가짜 환자들은 매일같이 약을 버리며, 정상 행세를 했다.

그런데 정작 가짜 환자의 정체를 눈치챈 건, 다름 아닌 병동에 있는 ‘진짜 정신질환 환자’들이었다고 한다. 어떤 환자는 “당신들, 무슨 조사하러 온 거 아니에요? 학자 같은 냄새가 나는데?”라고 직감적으로 간파했다. 이 같은 반응을 보인 실제 환자가 35명이나 되었다고 로젠한은 보고한다.

결국 가짜 환자들은 몇 주씩 (평균 19일, 최장 52일) 병원에 머무른 뒤, “약을 계속 먹는다는 조건” 하에 퇴원할 수 있었다. 이 실험 내용을 로젠한은 “정신이상한 장소에서 정상으로 존재하기(On being sane in insane places)”라는 논문으로 정리해, 1973년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했다.

논문의 파장은 상당했다. “정신과 의사가 정상인과 정신질환자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결론은, 당시 의학계에 커다란 돌덩이를 떨어뜨린 셈이었다.

이 논문이 퍼지자, 정신과 의사들은 곧바로 반발했다. “일방적으로 속인 거 아니냐, 우리에게 사전 통보도 없이!”라는 것이었다. 어느 병원에서는 “좋다, 그럼 우리가 한 번 제대로 간파해보겠다. 의심스러운 환자를 다 잡아내겠다”고 선언하며 로젠한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실험이 진행된 병원 중 하나인 세인트 엘리자베스 병원 (워싱턴 DC)

 

로젠한은 흔쾌히 “그럼 앞으로 3개월 동안 가짜 환자를 최소 한 명 이상 보낼 테니, 누가 가짜인지 가려보라”고 응수했다. 해당 병원에서는 그 기간 동안 새로 온 193명의 환자 중 무려 41명을 “가짜 환자”로 의심했고, 그중 19명을 “로젠한이 보낸 첩자”라고 콕 집어냈다.

그러나 로젠한은 그 병원에 단 한 명도 보내지 않았다. 결국 의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진짜 환자들에게 “가짜” 딱지를 붙인 셈이 되었다. 이는 “당시 정신과 진단은 주관적이며, 합리적인 기준이 확립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입증하는 결과였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치밀하게 속인 실험인데, 의사들이 불쌍한 것 아니야?” 하지만 암이나 심장병을 예로 들어보면 어떨까. 환자가 “저 암에 걸린 것 같아요!”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항암치료를 하진 않는다. 각종 검사를 통해 정확한 진단을 내린 다음에야 치료가 시작된다.

이와 달리, 1970년대 당시 정신질환 진단은 ‘의사의 판단’에 거의 전적으로 달려 있었다. 이 때문에 잘못된 처방이 이뤄지거나, 혹은 필요한 환자가 치료 기회를 놓칠 위험도 있었다. 게다가 입원한 가짜 환자들이 “개인 소지품을 빼앗기거나, 전기 충격 치료 같은 고통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보고도 있었다.

로젠한은 “정신병원에서는 사람에 대한 ‘레이블링(꼬리표 붙이기)’이 너무나 쉽게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인간성이 훼손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후 이 충격적인 사례를 계기로, 미국 정신의학계는 진단 기준을 대폭 수정 및 보완했다고 알려져 있다.

로젠한 실험은 분명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후대에 와서 “혹시 실험 자체가 과장된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제기되었다. 8명 가짜 환자 중 신원이 정확히 밝혀진 사람이 3명뿐이라는 점, 로젠한이 병원 측 반응을 조금 부풀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이 그 예다.

로젠한은 2012년에 사망해, 이 의혹들에 대해 직접 해명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 뒤 2019년에 “나리스마시—정신의 정상과 비정상을 뒤흔든 정신병원 잠입 실험”이라는 책이 출간되면서, 과거 조사 기록을 근거로 몇 가지 의문점을 제기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로젠한 실험이 당대 정신의학계에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진짜 미친 사람”과 “가짜 미친 사람”을 어떻게 확실히 구분하느냐는 문제다. 범죄자의 책임 능력을 가려내는 문제, 그리고 실제 환자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권리까지 걸려 있으니, 앞으로도 이 딜레마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렀어도, “사람은 정말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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