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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오염이 ‘온난화 속도’를 늦추고 있다는 딜레마

“대기오염이 심각해지는 것과 온난화가 빨라지는 것 중에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라는 질문이 갑자기 튀어나온다면 어떨까. 얼핏 들으면 황당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기후 변화와 대기오염이 맞물려 돌아가는 현실은 꽤나 복잡하다.

가령, 개발도상국의 대도시들을 떠올려보자. 공장 굴뚝과 도로를 오가는 차량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른바 ‘에어로졸’이라는 오염 물질이 하늘을 뿌옇게 뒤덮고 있다. 이 에어로졸들은 사람들의 호흡기를 자극하고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오염 물질들은 태양광을 어느 정도 반사해 기온 상승을 더디게 만드는 “일시적 양산” 역할도 한다. 오늘날 기후학자들은 이 미묘한 균형이 어쩌면 지구 온난화의 복잡한 퍼즐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말한다.

 

에어로졸 때문에 오히려 온난화가 더디게 진행된다

 

멜버른대학교 연구팀은 전 세계적으로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음을 밝혀냈는데, 흥미로운 점은 그 속도가 지역마다 꽤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집트 카이로나 인도 뭄바이 같은 대도시들은 극심한 빈곤층이 많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기온 상승이 상대적으로 느리다고 한다. 왜 그럴까. 바로 에어로졸 덕분이다. 뿌연 대기가 태양빛 일부를 반사해버려서, 그 지역의 기온이 잠시나마 억제되는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반대로 북미나 유럽은 대기오염 규제와 친환경 정책을 펼치면서, 미세먼지나 대기 중 에어로졸 농도가 감소하고 있다. 공기질이 좋아지는 건 당연히 좋지만, 에어로졸이 사라진 자리를 뜨거운 태양이 더 세차게 파고들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그 결과 온난화가 가속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대기오염을 그냥 두자니 사람 건강이 걱정이고, 그렇다고 싹 없애자니 지구가 더 빨리 데워진다”라는 이 묘한 상황.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건강이냐, 더위냐”라는 딜레마

 

이런 딜레마가 계속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에어로졸은 본래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라, 무턱대고 “더위를 좀 덜 타겠다”며 억지로 남겨둘 수는 없다. 단지 일정 기간 태양광을 가려주다 보니, 온난화 속도를 일시적으로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당연히 ‘몸에 나쁜 대기오염’과 ‘기온 상승 억제’ 사이에서 고민하는 건,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게다가, 대기오염이 개선되고 하늘이 맑아진 지역에선 기온이 더 빠르게 오를 수 있다. 문제는 이 폭염이나 열파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선진국이나 중산층 이상 계층은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더위를 피할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곳이나 계층에겐 치명적이다. 전력 공급이 안 되는 지역이나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폭염은 목숨을 위협하는 재난으로 다가온다.

 

에어로졸의 냉각 효과를 믿어도 될까?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의 적응정책 전문가 에디스 드 구즈먼 박사는 이런 상황을 두고 “머리가 아플 정도로 복잡하다”라고 말한다. 에어로졸이 기온 상승을 어느 정도 막아준다고 해도, 그것이 유해 오염 물질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더구나, 대기오염 개선에 따른 온난화 가속이 “이미 취약했던 지역이나 계층을 더 위험하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문제는 단순히 오염 물질과 기온 문제로만 볼 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기후불평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가 겹쳐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해결책은 있다

 

결국,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이 남는다. 연구자들은 대기오염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폭염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저소득층이나 취약 계층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고, 기후 적응책을 세밀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도시 녹지를 확대해 열섬현상을 완화한다든지, 건물 지붕 색을 밝게 바꿔 태양열을 반사시키는 쿨루프를 도입한다든지, 혹은 공공 냉방센터를 마련해 무더위에 취약한 사람들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 있다.

파리협정의 1.5도 목표는 날이 갈수록 달성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 말은 앞으로도 극단적인 날씨, 폭염, 기후 재난이 계속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미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 이슈를 넘어, 각 지역 간·계층 간 불평등을 더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대기오염을 줄여 맑은 하늘을 얻는 건 인류가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처럼 느껴지지만, 그 과정에서 폭염이 심해지면 또 다른 형태의 희생이 발생한다.

 

맑은 하늘도, 시원한 기온도 포기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에어로졸을 계속 뿌연 상태로 두자”는 식의 결론은 절대 아니다. 대기오염은 분명 억제되어야 할 대상이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온난화에 대한 근본적 해법도 대기질 개선에서 시작해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폭염이나 기상이변으로 인한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기후 적응 대책을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대기오염과 온난화 중 하나만 고르라면?”이라는 물음에 정답은 없다. 둘 다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을 방치하면 다른 한쪽이 폭발하듯 악화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 문제의 진짜 핵심은 ‘동시에 풀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에어로졸이 주는 일시적 냉각 효과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온난화 대응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대기오염을 줄이면서도 취약 계층을 보호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기후 정책에 대한 정치·사회적 의지와 과학적 접근이 필요해진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도, 모두가 안전하고 시원한 여름을 보낼 방법을 찾아내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가 ‘온난화 대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진짜 해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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